남북 군사회담이 버젓이 열리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버티고,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개최 제의를 해놓고도 이틀간 숨겨온 것이 드러나면서 박근혜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대북정책 투명성 원칙을 스스로 깼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 당국자 접촉과 관련해 철저히 입을 닫았다. 일부 여야 국회의원이 개최 사실을 ‘확인’해 기자들에게 전달하면서 TV 방송에선 이미 회담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접촉이 끝나고 오후 4시가 넘어 공식 확인했다.
통일부는 더 가관이었다. 오는 30일 2차 고위급 접촉 개최 제의를 담은 전통문을 보낸 사실을 이날에서야 실토했다. 13일 오전 전통문을 북측에 보낸 시각,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에 제의할 내용에 대해 현재 검토 중에 있어 아직 정확한 것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이것을 북한에 제의할 정확한 시점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14일에도 비슷하게 답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거짓 브리핑’을 한 것이다.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국방부와 통일부는 오후 늦게 각기 브리핑을 열어 뒷수습을 했다. 임 대변인은 “서해상에서 함정 간 교전이 발생하고 연천에서 총격이 발생하는 등 남북관계 상황이 예민한 시점이어서 공개하기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최소한의 사실조차 확인해주지 않아 혼란만 부채질한 꼴이 됐다. 투명성을 강조하던 정부가 갑작스레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지나치게 북한 측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월 1차 고위급 접촉 당시에는 북한이 비밀회담을 요구한 걸 정부가 반대해 공개로 진행했다. 대화도 시작되기 전부터 전후 과정이 두루뭉수리로 진행된다면 향후 남북회담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박 대통령 집권 2년차가 다 끝나가도록 남북관계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자 고심 끝에 ‘물밑 접촉’ 카드를 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근래 들어 남북 간에 오간 전통문을 비공개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서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번 북한 실세 대표단이 내려왔을 때 남북이 사전 교감한 것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를 다룬 한 전직 고위 관료는 “남북대화는 본래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속성이 있는데 그런 걸 무시하고 현 정부가 너무 투명하게만 하겠다고 밝힌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백민정 이종선 기자 minj@kmib.co.kr
회담중인데도 “모른다”… 대북정책 비밀주의 度 넘었다
입력 2014-10-16 0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