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 경기도청에서 최근 만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독일 출장을 준비 중이었다. 실무팀 5명과 함께 가는 1주일 동안의 단출한 출장이다. 그는 취임 후 미국과 중국에 이미 다녀왔다. 뭔가를 배워와 큰 그림을 그리려는 생각을 가진 듯했다. 연정과 개헌,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 사회적 시장경제, 남북협력, 외교역량 강화 등이 그가 고민하고 있는 키워드였다.
-독일 출장 이유는.
“독일의 연정도 공부하고, 1억5000만 달러 정도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다. 연정은 독일이 모델이다. 독일은 평균 재임 기간이 10년에 가까운 총리들을 배출해내는 아주 안정적인 권력분산시스템을 갖고 있다. ‘어젠다 2010’을 추진했던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나려고 한다. 슈뢰더는 사민당 좌파인데 집권한 뒤 성장을 위해 개혁의 전권을 대기업인 폭스바겐의 하르츠 회장에게 주지 않았나. 하르츠가 개혁의 1번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노동 유연성이다. 노동 유연성은 좌파 진영에서 보면 완전히 자신들을 배반하는 정책이다. 그것을 좌파 정권인 슈뢰더 정권이 도입하면서 지금의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 투자유치와 관련해서는 BMW 전기차 공장에 간다. 시장의 탐욕을 막고 지속가능한 시장경제를 위해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독일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큰 틀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에 기초한 배려의 경제를 경기도에서 시작할 생각이다. 청사 이전과 관련한 운영이나 프로그램을 대부분 사회적기업들에 맡기려 한다. 경기도가 사회적 경제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성장과 배려, 두 바퀴가 같이 가줘야 한다. 성장과 관련해서는 예를 들면, 도유지를 이용해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은 특혜시비와 상관없이 대기업에 맡길 방침이다.”
-독일의 연정을 경기도에 우선 적용할 생각인가.
“경기도 차원에서 연정을 통해 여야가 싸우지 않고 협력하면서 롱텀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경기도당위원장이 연정에 적극 협력해주고 있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국회 예산심의의 경우 300조원 이상의 예산이 정부안과 별 차이 없이 통과된다. 막판에 쪽지예산만 있다. 의회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가 법안과 예산이다. 지금 그 기능을 못하고 있다. 경기도가 먼저 시작할 생각이다. 예산편성 단계부터 도의회와 같이 논의하면 나중에 밤새우며 계수조정하고, 쪽지예산 집어넣고 하는 일 없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예결위원회가 상임위가 아닌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300조 예산 중에 국회의원들이 줄이고 빼는 건 1조 정도다. 국회의원 하면서 서글프고 자괴감 느꼈던 게 그 1조원을 여야가 6대 4나 7대 3 정도로 나누는 것이다. 그걸 또 지역구 의원들끼리 나누고, 실세들은 많이 가져가고, 지역구 의원들 평균 한 20억씩 나눠주고 한다. 지금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경기도부터 바꿔보려고 한다.”
-예산권과 인사권을 어떻게 나눌 생각인가.
“도지사의 권한을 쪼개주려 한다. 예산권과 인사권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사회통합부지사를 도의원이 겸임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내려고 한다. 국회의원들도 장관하고 있지 않나.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지만 대통령은 스무 명이 넘는 장관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4분의 1인데 지금 행정부지사 2명은 안전행정부에서 임명한 사람들이다. 부지사 한 명 딸랑 데리고 일하게 만들어놓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부지사를 서너 명 정도 임명해서 경제 노동 여성 복지 환경 교육 과학기술 이렇게 몇 개 분야를 나눠서 맡겨야 한다. 지방장관 형태로 임명해서 책임을 맡기고 거기서 의석수에 따라 도의원들이 부지사로 들어와 함께 일하면 굉장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경기도가 남북협력 사업에 적극적인 것 같다.
“박근혜정부에서는 물밑 대화가 없는 것 같다. 외교나 정치는 겉에서 부딪쳐도 밑에서 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전략적 대화가 없다. 경기도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우리 옥동자인 개성공단이 앞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경기도부터 노력할 계획이다. 5·24조치도 완화해야 한다. 지금 아무것도 못하게 막고 있다. 남북협력기금도 많이 쌓여 있다. 남북협력기금을 통해서 북한의 경제활성화, 인도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당장은 개성공단을 통한 남북경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의 역할은 정부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교 역량이 극대화돼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12월 첫째 주에도 중국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를 만나러 간다. 우리는 만나면 ‘셀카’도 찍으며 진지하게 많은 얘기를 하는 친구 사이다. 그 친구를 만나면 ‘분단돼 있고 북한에 핵이 있는 한반도보다는 통일일 되고 비핵화된 한반도가 중국에게 정말 좋다’고 얘기할 것이다. 중국의 차기 주석이 될 만한 친구들이 이런 인식을 해주면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원군이 될 수 있는 외교적 자산 아닌가.”
-최근 아들 문제 등으로 마음고생이 많았겠다.
“안사람 문제나 아들 문제 모두가 제가 가장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저의 잘못이고 저의 책임이다.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반성한다. 아들은 재판과 조사과정에서 자기가 잘못한 것을 다 인정했다. 피해 병사들과 부모, 부대원들이 탄원서와 합의서를 써 줬다. 합의금은 한 푼도 없었다. 아들이 항소하면 피해 병사들이 계속 재판에 나와야 하는데 자기가 재판을 해보니까 할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 자기 형량 줄이자고 피해 병사들 재판에 불러서 괴롭히고 싶지 않다면서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아주 확고하게 얘기해서 뜻대로 하라고 했다. 저의 잘못과 책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된 것 같다. 이제부터는 도정에 전념하겠다.”
-연정에 성공하고 도정도 성공하면 그 다음 비전은 뭔가.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의미가 크기 때문에 그 외에는 생각 안 하고 있다. 할 일이 너무 많고, 많이 모자라다. 경기도를 혁신하고 도민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내 것을 내려놓아야 연정이 가능”… 聯政에 대한 열정
"권력을 나눠줘야 연정이 가능하지 권력을 안 나누고 무슨 연정을 하겠나. 내 것을 내려놔야 가능한 것이다. 지방은 물론이고 중앙정치도 마찬가지다. 내 것을 내려놓고 먼저 변하면 바뀔 것으로 본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연정에 열정은 색다르다. 기존의 연정은 야권 후보 단일화로 승리한 정당들이 서 선거공조의 연장선에서 추진했다. 남 지사가 시도하는 연정은 패배한 상대 당에 예산권과 인사권이라는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책협의회를 통해 정책연합도 추진되고 있다.
그의 연정 구상은 현재의 승자독식 권력구조를 분권형으로 바꾸는 개헌과도 연결돼 있다.
그는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개헌 논의 없이 근본적인 혁신은 안 된다. 혁신의 정점에 개헌이 있다"고 말했다.
51대 49로 이겨도 권력을 100% 갖는 대통령제는 여야 간 갈등을 숙명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남 지사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불과 0.8% 포인트 차이로 당선됐다.
그는 "권력이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면서 분점할 수 있는 연정을 통해서 20∼30년을 내다보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도의회에서의 열세(새누리 50석, 새정치연합 78석)를 극복하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상생과 협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연정을 선택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여야 대결 구도에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경기도에서 시도되는 연정 실험이 성공할지 주목된다. 경기도의 연정 실험이 성공하면 다른 지방으로 전파되고, 결국 중앙 정치권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남 지사는 "경기도에서 연정을 통해 여야가 협력하면서 민생에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이면 중앙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신종수 사회2부장이 남경필 경기지사를 만나다
입력 2014-10-17 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