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이버 사찰 논란] 안전한 e세상 텔레그램 두얼굴 無法 해방구

입력 2014-10-16 03:17

전업 주식투자자 A씨는 독일의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누구보다 유용하게 쓰고 있다. 매일 아침 투자자들과 텔레그램 그룹채팅방에 모여 작전을 짠다. 각 종목을 매매할 때 터무니없이 높은 호가를 부르는 일명 ‘낚시 호가’ 작전을 쓰고 있다.

주식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지만 A씨는 “(적발될)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해했다. 카카오톡을 쓰던 때와 달리 ‘암호’로 대화를 주고받을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15일 “국내 메신저를 쓸 때는 추적당할까 우려됐는데 텔레그램은 증거가 안 남는다니 안심”이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검열 우려에 국내 메신저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텔레그램 등 외국 메신저들이 불법·부정행위에 악용되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화 내용이 저장되지 않는 데다 범죄에 연루돼도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등 적극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의 국내 다운로드는 200만건을 넘어섰다. 직장인 김기욱(26)씨도 동료들을 따라 텔레그램을 깔았다가 곧바로 밀려드는 스팸 메시지에 크게 당황했다. 수사기관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법 도박 사이트 등이 홍보매체로 텔레그램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카카오톡 ‘친구추천’에 뜨던 도박 사이트나 음란 사이트 계정이 그대로 텔레그램으로 넘어왔다”며 “스팸 걱정 없이 친구들과 단란하게 쓸 다른 메신저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업자들도 활개를 친다. 이들은 텔레그램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들이 실수로 악성코드가 포함된 링크를 누르도록 유도한다. 명예훼손 우려가 큰 일명 ‘찌라시’ 정보지나 음란물도 텔레그램을 유통 경로로 삼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에서 대화를 나누다가도 “중요한 내용은 텔레그램으로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고 하는 식이다. 속칭 ‘조건만남’ 등 성매매를 알선하는 사람들이 일단 카카오톡으로 접선한 뒤 “텔레그램으로 옮겨서 얘기하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 메신저지만 대화 내용을 서버에 저장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틱톡’은 오래전부터 성매매 업자들이 애용해 왔다. 온라인에서 ‘조건만남’이나 ‘오피스텔 성매매’ 등을 검색하면 나오는 광고글에는 으레 “틱톡으로 연락 달라”는 내용이 따라붙는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관계자는 “메신저를 이용한 범죄는 경중에 따라 외국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 추적할 수 있다”며 “서버에 단기간이라도 저장이 됐다가 지워진 메시지는 수사에 필요할 경우 복구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안을 강조한 메신저들은 대부분 메시지를 아예 서버에 저장하지 않아 이런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