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인들의 전화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맥락을 모르고 들으니 주부들의 평범한 수다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흘러나오는 줄 알았다. 검찰청사에서 업무시간에 웬 라디오를 틀어놨을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검사는 감청 중이라고 귀띔했다. 감청 대상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기자도 물어보지 않았다. 취재하고 싶어 찾아간 용건과 무관했고, 묻는다고 답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궁금했다. 감청은 수사기법상 보안이 생명인데 왜 이렇게 온 방이 떠나가도록 누군가의 전화통화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별것 아니라는 투의 대답을 들었다. 장시간 헤드폰을 쓰고 감청장비 앞에 앉아 있으려니 힘들고, 조사실이나 안쪽 접견실에 있어도 어디서든 편하게 통화내용을 듣기 위해서라고.
오래전 사건기자 시절 서울남부지청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남부지청이 남부지검으로 승격하기 전이고, 목동 청사로 이전하기 전 영등포 낡은 건물에서 벌어진 일이라 지금도 그런 수사관행이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수사기관의 감청이 절제되지 않은 채 남발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당시 감청 대상자는 자신의 사생활이 검찰청사 안에서 생생하게 중계되는 줄 알았다면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사생활 침해 저인망 수사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의 감청영장 불응 발언으로 사이버 사찰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검찰은 기술적으로 문자메시지를 실시간 감청할 수 없고, 법적으로도 사적 대화를 일상적으로 검열할 근거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불신과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 대표의 발언으로 그동안 다음카카오가 법적근거가 불분명한 검찰의 요청에 고객들의 문자를 아무런 저항 없이 내준 게 확인됐을 뿐이다. 검찰은 압수수색영장 대신 감청영장의 기간을 연장하면서 최근에 일어난 특정인의 문자를 통째로 넘겨받아 사실상 감청효과를 얻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감청영장은 실시간 대화를 엿듣기 위해 법원의 허가를 받는 것이고, 서버에 보관된 대화내용을 사후에 확인하려면 압수수색영장이 필요하다. 법원은 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를 물어 가능하다고 답을 얻을 때만 영장을 발부해 왔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기술적으로 감청이 안 되는데도 조건이 까다로운 압수수색영장 대신 감청영장을 받아낸 것이다. 검찰이 법원을 속였거나, 법원이 검찰의 수사편의를 위해 눈을 감은 것이다.
감청을 하게 되면 범죄혐의와 무관한 사생활도 수사기관에 포착된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안심리가 마구 확산되는 이유다. 감청이든 압수수색이든 수사기관이 사적 대화를 광범위하게 들여다본다는데 어쩌면 그 대상에 ‘내’가 포함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사이버 망명 현상을 촉발시키고 감청영장 불응 발언까지 낳은 것이다.
무분별한 감청 억제해야
통신비밀보호법상 감청할 수 있는 범죄는 아주 다양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나 뇌물, 공직비리뿐 아니라 마약사범이나 폭행, 사기 등 수사에도 감청을 할 수 있다. 뇌물 수사를 위해 감청을 했다가 다른 혐의가 나오면 사기나 명예훼손 등으로 수사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당초 목표했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는 대신 다른 수사단서가 나왔다면 이를 외면할 수사기관이 있을까.
수사기관이나 법원, 통신사 직원이 감청사실을 발설하면 처벌받는다. 수사보안의 필요성 탓이지만 감청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감청을 했으나 별다른 혐의를 잡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감청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면 통화나 문자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억압심리가 확산된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감청 사실 자체가 쉽게 노출되지 않아서인지 감청영장이 예사로 이뤄지고 있다. 감청영장의 발부율이 96%에 이른다는 게 단적으로 말해준다. 감청영장의 기준을 강화하고, 무분별한 청구와 발부가 절제되고 억제돼야 한다.
전석운 사회부장 swchun@kmib.co.kr
[데스크시각-전석운] 감청수사의 유혹
입력 2014-10-16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