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육근해] 점자, 소통의 창이 되다

입력 2014-10-16 02:19

시각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촉각과 청각이다. 촉각을 통해 점자를, 청각을 통해 음성으로 정보를 얻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굳이 점자로 재편집하지 않아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술을 내놓아 원하는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를 내것으로 만들고, 한 점 한 점 읽어가면서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법으로는 점자가 가장 좋은 정보접근 방법이다. 실제로 시각장애인 및 문자를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독서 장애인들은 자신들에게 점자는 친구이며 세상의 빛을 밝혀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점자는 하얀 종이에 6점을 찍어 손가락 끝으로 읽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6개의 점으로 63개의 조합수를 만들어 글자를 이루는 것이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풀어쓰기 방식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점자책을 늘 보며 자라왔다. 나의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셨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불이 없어도 사락사락 종이를 넘기시며 읽으시는 아버지의 점자책은 신기하고 놀라웠다. 때로는 점자를 읽으시며 그 안의 내용을 말씀하기도 하셨는데 어린 내 마음에 ‘정말 그 내용이 있는 것일까?’ 하며 궁금했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어 점자를 배우고 나서야 읽으시는 책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한국점자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내 어렸을 때 기억을 더듬으며 시각장애와 비장애 사이, 즉 부모와 자녀 간, 형제간,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장애 동생만 읽는 그림책을 시각장애 형도 같이 읽으며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나는 ‘책=소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책 한 권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나는 소통의 장이 만들어질 수 있길 희망했다.

그래서 일반 그림책에 점자 스티커를 붙여 시각장애 형과 비장애 동생이 함께 읽고 내용을 공유하게 하였다. 독수리 깃털 등의 동물 피부, 뾰족뾰족 등과 같은 의성어, 의태어를 설명할 수 없어 다양한 촉감각책 촉각도서를 점묵자 혼용으로 개발해 시각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소통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책을 통해 시각장애 형이 비장애 동생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게 되면서 느끼는 자존감, 자신감은 굉장한 효과를 나타냈다.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족 간의 대화가 길어지고 장애로 인한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는 계기도 되었다.

공공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이런 점자라벨도서, 점묵자촉각도서를 보고 읽으며 자란 비장애 아동들은 시각장애 친구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게 된다. 자기가 읽는 책을 시각장애 친구들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시각장애 뭐가 문제인데? 나와 같은 책도 읽는데∼”라는 생각을 키워가는 것이다. 아마도 이 아동들이 자란 10년, 20년 후에는 ‘장애’라는 개념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나 기업의 간행물, 안내책자를 점묵자혼용도서로 개발하면서 점자를 모르는 중도시각장애인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시각장애라 해서 점자 간행물만 전달할 경우 점자를 몰라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좋은 정보도 놓쳐버렸던 문제가 비장애 가족이나 이웃이 보고 이야기해주거나 장애·비장애 부부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문화가 화두인 시대에 살고 있다. 시각 및 독서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문화를 느끼고, 문화를 만나고, 문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 점자는 그 활용에 따라 장애와 비장애 간 소통의 매개체가 되고 사랑의 전달체가 되어줄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사회가 이 점자를 활용해서 보다 많은 사람이 장애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사랑을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위해.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