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고무오리 ‘러버덕’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 된 이유는?

입력 2014-10-16 02:50 수정 2014-10-16 13:47
1992년 홍콩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컨테이너 화물선이 폭풍우를 만나 러버덕 장난감 2만8000여개를 바다에 유출했다. 당시 상황을 찍은 사진으로 수많은 러버덕 장난감이 바다에 떠 있다. 인서클더월드 홈페이지 캡쳐

거대하지만 귀여운 고무 오리인형 ‘러버덕(Rubber Duck)’이 14일 서울 잠실동 석촌호수에 떴습니다. 서울 시민들은 러버덕을 직접 보기 위해 석촌호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2시쯤부터 러버덕이 병든 오리마냥 앞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바람이 빠져 흐물흐물해진 겁니다.

이게 전화위복이 된 걸까요. 러버덕을 향한 관심은 더 커졌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엔 러버덕을 집적 찍은 사진들과 재치만점 댓글로 가득합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작은 러버덕 장난감 수천개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진입니다. 게다가 모두 선글라스를 쓰고 있습니다. 함께 오른 글엔 러버덕이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 된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지금부터 22년 전인 1992년 홍콩에서 미국으로 가던 화물선이 우리나라에서 멀지 않은 북태평양 해상에서 폭풍우를 만나 침몰할 뻔합니다. 이때 러버덕 장난감을 잔뜩 실은 컨테이너가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컨테이너 안에 있던 러버덕 장난감 2만8000여개가 유출돼 바다 위에 장난감 섬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고가 뜻밖의 결과를 불렀습니다. 바다에 흩어진 수많은 러버덕 장난감들이 20여년 동안 해류를 따라 이동하면서 해양학자들이 조류 연구를 하는 데 도움을 준 겁니다. 러버덕 장난감들은 호주 북부 해안가를 시작으로 알래스카, 캐나다, 미국을 거쳐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의 해안까지 도달했습니다. 발견한 사람들은 귀여운 모습에 즐거워했죠. 이들의 세계일주 사연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러버덕을 가지면 행복이 따라온다”는 의미가 부여됐습니다. 초대형 러버덕까지 만들어지자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통하게 된 겁니다.

네덜란드 설치 예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먼은 16.5m, 세로 19.2m, 높이 16.5m, 무게 1t의 초대형 고무 오리 조형을 제작한 후 ‘러버덕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2007년에 시작돼 전 세계 16개국에서 20회 이상의 순회전시를 했습니다. 호프먼은 아시아투어 종착지인 서울에 러버덕을 데리고 오면서 “재난과 사고로 실의에 빠진 한국 국민들이 기쁨과 희망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의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네티즌들은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둔 ‘개념발언’이라며 공감하고 있네요.

러버덕은 다음달 14일까지 서울에 머무릅니다. “당신을 미소 짓게 하고 싶다”는 호프먼의 바람대로 깜찍하면서도 늠름한 러버덕이 상처받고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치유해줬으면 합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