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었다는 내용의 동화가 있죠? 처벌과 강압보다는 감동을 통한 변화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데요. 학교폭력 도시 오명으로 홍역을 치렀던 대구에 이 같은 감동을 통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바로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뮤지컬 등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인데요.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한 것은 바로 학교폭력을 감시하고 처벌해야 하는 대구시교육청과 일선 경찰서들이었습니다. 이 기관들이 엄격한 규제와 처벌 대신 감동으로 학교폭력 근절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학생들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감동의 시작, 뮤지컬 ‘선인장 꽃피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동급생의 끔찍한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대구 중학생 권승민(당시 13세)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인데요. 당시 이 사건은 언론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학교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후에도 대구·경북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한 학생 자살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며 대구는 ‘학교폭력도시’ ‘학생자살도시’ 등의 오명을 얻게 됐습니다. 왕따, 빵셔틀, 일진, 학생 자살 문제 등도 이때 수면 위로 떠올랐죠.
대구시교육청은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막을 여러 대책을 고민하던 중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뮤지컬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대구시교육청 소속 기관인 대구학생문화센터가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뮤지컬 제작 사업은 극단 어울림이 뮤지컬 제작을 맡으며 현실화됐습니다. 2012년 4월 결국 ‘선인장 꽃피다Ⅰ’을 무대에 올리게 됐죠. 1시간20분짜리인 이 뮤지컬에는 권군이 동급생들에게 당했던 충격적인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극단 한울림 소속 배우 등 30여명이 출연해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죠.
‘문화의 힘’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다
이 공연은 소위 ‘대박’이 났습니다. 2013년 말까지 184회 공연에 20만여명이 관람했습니다. 경남 창원, 경북 포항·경주, 부산 등 대구 이외의 지역에서도 14차례나 공연됐습니다. 대구학생문화센터가 관람 학생 8400명에게 물어보니 91.5%가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고무된 대구시교육청은 ‘선인장 꽃피다Ⅱ’도 만들었습니다. 지난 4, 5, 7월과 이달까지 모두 48차례 공연됐고 5만여명이 관람했습니다. 오는 12월에도 공연이 예정돼 있고 2만여명이 더 관람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보다 희망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 비보이가 되려는 한 고교생이 친구들에게 폭행과 따돌림을 당하지만 꿈을 이야기하면서 화해하고 꿈에 한 발짝 다가간다는 줄거린데요. 역시 SNS를 이용한 따돌림, 언어폭력 등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을 본 중학교 1학년 김혜영(13)양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양은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봤는데 끝날 때는 마음이 무거웠어요. 공연이 끝난 뒤 한참 동안 친구들과 학교폭력에 대해 이야기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극단 한울림 정철원(48) 대표는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학생들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 등을 적절히 배치해 뮤지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공요인인 것 같습니다. 공연 때마다 학생들을 살피는 데 격하게 공감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지요”라고 작품을 평가했습니다. 정 대표는 학교폭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루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감동을 통한 변화’ 분위기 확산
선인장 꽃피다의 성공은 경찰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대구 성서경찰서가 계명문화대학교와 함께 뮤지컬 ‘용서받지 못할 친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성서경찰서 학교폭력 담당 경찰관과 계명문화대학교 뮤지컬학과 학생들이 6∼7월 2개월 동안 함께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매일같이 연습장에서 연출에 관한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고 하네요. 지난 9월 지역의 10개 중·고교를 돌며 공연을 펼쳤는데 공연을 본 1만여명의 학생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고 합니다.
뮤지컬의 여러 장면은 모두 실제로 일어났던 학교폭력 사례들입니다.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하는 ‘셔틀맨’ 이야기, 단체 채팅방에서 따돌림 당하는 모습, 무면허 상태의 폭주 장면 등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거나 이야기 들었을 법한 내용들입이다. 또 거침없는 욕설 등 사실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죠.
뮤지컬 제작에 참여한 류준희(52·성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위는 내용의 현실성 때문에 학생들이 격하게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류 경위는 “신나는 노래와 춤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던 학생들이 폭력이 벌어지고 피해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면에서 모두 심각해져요. 한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이 이렇게 집중하는 것을 처음 봤다고 칭찬하기도 했죠”라고 공연장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친구들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추가 공연 계획은 잡혀 있지 않지만 공연 관계자들과 교육 관계자들 간에 추가 공연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더 많은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성서경찰서 관계자들의 생각이니까 곧 추가 공연 계획이 잡힐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폭력 문제 스크린 속으로
대구 강북경찰서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가제) 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북경찰서는 영화 제작을 위해 지난 8월 초 국제청소년단체 ‘We awake’(위어웨이크)와 너에게 하고 싶은 말 공동 제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영화 촬영에 돌입했습니다.
박한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학교 및 가정폭력과 장애인 문제 등을 주로 다룰 예정인데요. 장애인 소녀와 경찰, 폭력 가해자, 피해자들이 관심과 사랑을 통해 점차 바뀌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낼 예정입니다.
영화에는 김한탁 강북경찰서장과 아동청소년계장 등 강북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직접 출연합니다. 대구 매천고 학생들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특히 매천고 학생들은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작업에도 함께한다고 합니다. 촬영은 강북경찰서를 비롯해 대구보건대병원, 계명대학교, 이월드, 매천고, 동성로, 두류공원 등 대구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현재 촬영은 모두 마친 상태로 편집 등 후반 작업이 한창입니다. 영화 제작은 모두 재능기부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영화에서 장애 소녀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정혁(25)씨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연기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영화가 완성되면 오는 11월부터 서울, 대구, 충남 등지에서 시사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이후 유관 기관 및 SNS 등에 교육용 자료로 배포될 예정입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출연까지 하게 된 박민장(36·강북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사는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영화 촬영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하지만 영화 배경이 대부분 대구 지역이고 내용도 현실적인 것이 많아 학생들이 많이 좋아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슬로 뉴스] 문화로 만난 학교 폭력 더 끔찍하고… 더 공감되는…
입력 2014-10-16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