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逆鱗)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용의 비늘은 단단해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용의 목 아래 비늘 하나만은 거꾸로 붙어 있는데, 이 부분이 급소입니다. 이를 역린이라고 하는데, 역린을 건드리면 용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덤벼듭니다. 우리에게도 누구나 이런 역린이 있으며 이를 건드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오늘 본문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관헌 또는 부자 청년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진지하게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그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2절에 보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마다 이처럼 약점이 한 가지씩은 있습니다. 결국 이 한 가지 때문에 우리 운명이 바뀝니다. 영생을 누릴 수도 있고, 영생에서 영영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모든 일에 자신이 있었고, 남들이 보기에 흠 없는 삶을 산 듯합니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집착은 버릴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후 성경 어디에도 그 사람이 예수님에게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영생의 기쁨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사람의 역린을 건드리셨을까요. 많은 장점을 보고 모른 척 넘어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것은 이 부족한 한 가지가 영생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재물이 많다는 것이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우리는 종종 더 많은 재물을 얻게 해 달라고, 더 큰 권력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대로 응답하신다면 정말로 여러분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기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예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때 더 행복하고 기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할지라도 부족한 한 가지, 그 역린 탓에 구원받을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믿음의 조상들은 약점을 극복하고, 집착했던 것을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의 역린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에 걸려 넘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그것을 디딤돌 삼고 일어서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자신의 역린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사람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임화식 순천중앙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신앙의 역린
입력 2014-10-1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