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선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풍경들이 속출한다. 여야 의원들은 그동안 공들여 준비해놓은 국감 자료들을 쏟아내고 언론 홍보에 열을 올린다. 누가 더 날카로운 질의로 피감기관을 혼내느냐에 따라, 누가 더 정교한 자료로 정부기관의 감춰진 이면을 들추느냐에 따라 ‘국감 성적표’가 매겨진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에게 국감용 튀는 발언과 행동, 독특한 소품 동원 등은 일종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국감 일정이 확정되면 각 의원들 보좌진의 최대 임무는 언론 노출로 바뀐다. 가장 큰 슬로건은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감 첫날이었던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환경부 국감장에선 ‘괴물쥐’ 뉴트리아가 등장했다. 뉴트리아가 우리 숲과 들판의 생태를 교란시킨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이 철창에 갇힌 괴물쥐를 동원했다. 덕분에 김 의원은 그날의 ‘국감 스타’가 됐다. 같은 날 식품의약품안전처 국감장에선 치약이, 다음 날 소방방재청 국감에선 방화복과 방화장비가 등장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다수 치약이 인체유해물질인 파라벤을 함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소방관들의 방화장비 일체가 너무 낡았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이런 소품들은 자신이 ‘모시는’ 의원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보좌진이 머리를 짜낸 아이디어다.
무려 700개가 넘는 피감기관으로부터 각 의원실이 제출받은 국감자료도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13일 하루만 399건의 보도자료가 이메일을 통해 취재기자들에게 뿌려졌다. 평소에는 자신이 속한 정당의 출입기자들에게만 보도자료를 제공하는 의원들도 유독 국감이 되면 상대 당을 출입하는 취재진에게까지 국감자료를 돌린다. 한 줄의 기사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350건 이상 뿌려지는 자료 가운데 언론에 소개되는 것은 겨우 하루 10여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냥 이메일 ‘휴지통’으로 직행한다.
국감이 점입가경으로 갈수록 보좌진의 시름은 더 깊어진다. 알리고 싶은 해당 의원 이름이 언론에 나오지 않는 경우는 더하다. 의원회관에서는 고성으로 보좌진을 나무라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스트레스성 탈모나 일시적 성격장애를 호소하는 의원 보좌관들이 급증한다.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최근 해당 상임위에서 논란이 됐던 국감 이슈 때문에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모시는 의원이 “다른 의원실에서는 이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자료를 내는데 왜 이 문제를 준비하지 못했느냐”고 질책을 한 것이었다. 다른 보좌관은 “국감 시즌엔 휴일수당도 못 받고 일한다”면서 “그런데도 심한 질책까지 당하면 ‘이 일을 계속해야 되나’ 회의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작금의 국감 행태가 본질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꼬집는 목소리도 많다. 국감자료 하나로 단번에 ‘스타 정치인’이 되려 하는 국회의원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정작 입법부의 행정부 감시라는 본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의원 스스로 전문성을 높이고 평소에도 국정운영 전반을 감시할 수 있도록 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단발성 행사로 국감이 변질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상시국감’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의원과 보좌진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대하고 있다. 입법 활동에다 지역구 관리까지 해야 하는데 국감까지 일상화되면 몰입도가 엄청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최승욱 임지훈 기자 applesu@kmib.co.kr
[정치 인사이드] “어떻게든 언론에 보도돼야” 튀는 발언·행동이 생존전략
입력 2014-10-15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