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③ 방글라데시

입력 2014-10-16 02:36 수정 2014-10-16 13:34
한국월드비전의 도움으로 재건축되기 전의 학교 모습.
월드비전의 생계지원사업으로 소 한 마리를 지원받아 네 마리로 불린 도몰 초비따씨 가족.
월드비전에서 재봉틀을 지원받아 자립의 발판을 마련한 루시아 마란디씨가 가족.
방글라데시 다모이랏의 푸르바난단푸르 주니어하이스쿨 학생과 교직원들이 지난 1일 한국월드비전 모니터링 방문단과 함께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지난 1일 방글라데시의 서북부 인도 접경지역인 다모이랏의 푸르바난단푸르 주니어하이스쿨에서 귀에 익은 곡이 들려왔다. 한국월드비전 모니터링 방문단을 환영하는 한 여학생이 부른 노래였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 185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이 학교 건물은 2011년 5월 한국월드비전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재건축됐다. 학생들은 짧은 연극을 통해 재건축 이전의 학교생활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1995년 세워진 이 학교는 지붕과 벽이 모두 양철로 만들어져 녹슬고 찌그러져 있었다. 따가운 햇볕도, 거센 비바람도 막지 못해 비가 오면 우산을 쓴 채 수업을 듣곤 했다. 온갖 벌레들은 물론 뱀도 기어들어와 교실을 돌아다녔다. 화장실도 없어 주변 숲에서 용변을 봐야 했다.

연극에서 교장 역을 맡았던 8학년 학생 아키(13)양은 “예전에는 비바람만 불어도 수업을 받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문제없다”면서 “한국의 후원자들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이 다모이랏에서 지역개발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수도 다카에서 260㎞ 거리에 있는 이곳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도 낙후된 오지로 꼽힌다. 260개 마을에 4만9000가구, 18만4778명이 살지만 51.3%가 농업 종사자, 34.4%가 일용직 노동자. 하루 농사일이나 허드렛일을 해서 버는 돈은 100∼150타카(약 1400∼2100원) 수준. 그나마도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2차례 수확철을 합쳐 6개월에 불과하다. 인구의 50.1%가 문맹이고, 5세 미만 아동의 45.8%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화장실 보급률도 31.8%에 불과해 대부분 숲이나 들판에서 용변을 해결하고 있다.

라조니 하스다(3·여) 가족은 이곳 빈곤층의 전형이다. 소수민족 출신인 라조니의 부모는 조상 대대로 소작농으로 살아왔다. 둘 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이름만 겨우 쓸 줄 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지주의 소유다. 수확철 6개월 정도는 하루 150타카(약 2100원) 정도를 벌지만 나머지는 벌이가 없어 빚을 내야만 한다.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다시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일을 하게 돼도 빚을 갚느라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부부의 유일한 희망인 라조니는 만성적 영양실조로 고열과 감기, 피부병 등에 시달리고 있다.

월드비전은 이곳에서 아동결연사업을 중심으로 우물파기, 화장실 보급, 위생보건교육, 아동영양개선, 조혼관습 척결, 생계지원 등을 추진해왔다. 지금까지 3496개의 구덩이 화장실을 보급했고 189개의 우물을 설치했다. 학교도 4곳을 재건축했다. 영양실조 아동들에게 영양식을 보급하고 어머니들에게 보건·위생교육도 실시한다. 염소 암소 릭샤(자전거 수레) 등을 지원해 자립을 유도하는 생계지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들 사업은 모두 지역주민자치조직을 통해 이뤄진다. 월드비전이 철수한 뒤에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조그돌 마을의 루시아 마란디(36·여)씨가 생계지원사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아들 하나를 둔 그는 남편과 함께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12년 8월 월드비전에서 봉제교육을 받고 재봉틀을 지원받은 뒤 자립의 발판을 마련했다. 직접 옷을 만들어 팔아서 월 2000타카(약 2만8000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신용조합에서 1만 타카(약 14만원)를 대출받아 땅을 빌린 뒤 벼농사도 지었다. 5000타카는 이미 갚았고 나머지 수익으로 암소와 닭, 오리를 사서 키우고 있다.

다단푸르 마을의 산토나 마하토(26·여)씨도 2011년 월드비전에서 염소 한 마리를 지원받았다. 사육법도 교육받아 염소를 열두 마리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염소 세 마리를 팔아 농사지을 땅을 임대했고, 네 마리를 팔아 남편을 위한 릭샤를 구입했다. 릭샤가 있으면 수확철이 아닐 때도 하루 200∼300타카(약 2800∼4200원)를 벌 수 있다. 하루 한 끼만 먹던 그는 이제 하루 세끼 식사를 한다. 네 살인 아들을 의사나 기술자로 키우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마하토씨는 염소를 처음 지원받을 때 약속한 대로 이웃인 소나모니씨에게 염소 한 마리를 나눠줬다. 그도 염소를 열두 마리까지 늘렸고 일부를 팔아 어린 암소와 릭샤를 샀다. 이들은 모두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을 찾았다.

현재 다모이랏 아동들과 결연한 한국월드비전 후원자는 약 4000명이다. 이들이 보내오는 한 달 3만원의 후원금이 곳곳에 희망의 씨앗으로 뿌려지고 있다. 개인 후원자 외에 문산조은교회(김백현 목사) 등 교회와 기관, 기업들도 이곳을 돕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월드비전 다모이랏 지역개발사업장의 비말 트람 매니저는 “멀리 한국에서 사랑의 손길을 보내준 후원자들 덕택에 다모이랏에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면서 “이곳 아동들과 주민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모이랏(방글라데시)=글·사진 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