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40일 만에 지팡이 짚고 나타난 김정은

입력 2014-10-15 03:59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40일 만에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그가 지난달 3일 이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면서 한국과 중국, 미국 등에서는 건강이상설을 넘어 쿠데타설, 뇌사설까지 제기됐었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은 14일 왼손에 지팡이를 짚은 김 제1비서가 최룡해·최태복 당 비서(왼쪽 사진 오른쪽 두 번째, 세 번째) 등을 이끌고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만에 지팡이를 짚고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 최고지도자의 건강 이상은 곧 체제 위협 요인이어서 최대한 ‘불편한 몸’을 숨기는 게 통상적이다. 그런데도 김 제1비서는 북한 최고지도자로선 처음으로 지팡이 같은 보정구에 의지한 채 현지지도를 감행했다. 노동신문이 14일 공개한 사진에서 그는 한눈에 봐도 왼쪽 다리가 불편한 모습이었다.

다소 파격적인 ‘지팡이 공개 활동’은 역설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안전성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다. 국정을 장악하고 정상적인 통치를 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내외에 건재함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2008년 8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자신의 건강이상 징후를 숨기려고 애썼던 것과 정반대 행보다. 권력 장악에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몸이 완쾌되기 전 무리하게 활동을 재개한 배경에는 실각설, 중병설 등을 서둘러 차단하기 위한 포석도 담겼다는 지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발목 수술에서 완전히 회복되려면 2∼3주가 더 필요할 텐데 심하게는 뇌사 상태라는 둥 온갖 억측이 나오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개 활동을 재개한 듯하다”면서 “지팡이를 짚은 걸로 봐서 서둘러 나온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내부 결속을 다잡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김 제1비서가 2012년 집권한 이후 40일 잠행은 최장 기간이다. 북한 주민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 수 있다. 때문에 그가 현지지도 장소로 과학자주택단지와 에너지연구소를 택한 것도 경제 발전과 주민을 위해 헌신하는 ‘인민적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하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살림집(주택) 소학교 초급중학교 약국 종합진료소 태양열 온실 등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여러 곳을 돌아보시면서 건설 정형(실태)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하셨다”고 보도했다. 또 김 제1비서가 주택지구 내 건물들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 희한한 풍경이다”라고 감탄을 연발했다고 전했다.

노동신문이 게재한 사진 속 김 제1비서는 지팡이를 짚은 것만 빼면 그리 수척해 보이지 않았고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간부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활짝 웃기도 했다. 지난 4일 방남(訪南)했던 권력서열 2인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소파에 앉아 있는 김 제1비서 옆쪽에 서서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5·24 대북제재 조치와 관련한 남북대화를 언급하자 이튿날 김 제1비서가 등장해 ‘화답’한 것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5·24조치를 포함해 남북 관심 현안을 대화 테이블에 올려 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