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학생들 넘을 수 없는 ‘대학 문턱’

입력 2014-10-15 03:34

대학 캠퍼스가 장애 학생들에게 문을 닫고 있다. 노후된 탓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도 많다. 이름은 ‘장애인 화장실’이지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2층에 설치된 경우도 있다.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는 ‘폭풍의 언덕’으로 불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다. 장애가 없는 학생도 걸어 올라가면 숨이 찬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다. 지하철 6호선 안암역과 가까워 많은 학생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나는 이 언덕을 장애 학생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르내려야 한다.

이 학교에는 서관과 홍보관, 제1실험관 등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도 많다. 고대생 신모(21)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아 장애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가 우려될 정도”라며 “엘리베이터가 있더라도 비장애 학생과 함께 타도록 돼 있어 사실상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제대로 쓸 수 없는 화장실에 장애인 명패만 붙여놓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한 고려대 학생이 “장애인 화장실이 아예 설치돼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통로가 좁아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없어 대부분 무용지물”이라며 학교 측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을 접수한 학교 측 관계자는 “장애인지원센터에 정식으로 불편사항을 신고하고 공사를 요청하라”고 답변했지만 막상 지원센터에 가보니 담당 직원이 없어 불편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윤관석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4년제 대학 204개교 중 103개교(50.3%)에만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돼 있었다. 전문대 역시 127개교 중 45개교(35.5%)에 그쳤다.

다른 대학도 장애인에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학기 학점교류로 한국외대 강의를 신청한 서울 사립대의 지체장애 학생 A씨는 개강 첫날 캠퍼스에 도착한 뒤 크게 당황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인문과학관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그가 강의실에 올라갈 방법이 없다는 의미였다. A씨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간 뒤 수강을 철회했다.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에는 신본관과 사이버대학 등 2000년대 이후 지어진 건물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이 대학 4학년 김모(25)씨는 14일 “외대가 오래된 건물 외벽과 강의실을 꾸미는 데만 치중할 뿐 정작 장애인을 위한 시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또한 소외받고 있다. 평택대 재활복지학과 권선진 교수가 지난 5월부터 한 달간 시각장애 대학생 1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점자 유도 블록이 없어 교내 이동이 어렵다”고 답했다. “교내에 점자 안내판이 없다”고 응답한 학생도 57명이었다.

국립특수교육원이 2011년 발표한 ‘장애대학생 교육복지 지원 실태조사’를 보면 전국 331개 대학 중 143개(43.2%) 대학이 장애인 전용 시설 평가에서 ‘개선 요망’ 등급을 받았다. 특히 엘리베이터, 경사로, 강의시설 접근성 등 내부시설 항목에서는 63.4%(210개교)가 ‘개선 요망’ 평가를 받았다.

윤 의원은 “장애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만드는 건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며 “장애인 편의시설은 실제로 장애인이 쓸 수 있도록 설치돼야 하며 장애인 명패만 붙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