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軍 의료체계, 맹장수술도 제때 못할 정도인가

입력 2014-10-15 02:40
급성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공군 병사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또 일어났다. 국방부가 군 의료체계를 확 뜯어고치겠다고 공언한 게 언젠데 아직까지 이 같은 후진적 사고를 겪어야 하는지 말문이 막힌다. 맞아 죽고, 총기 사고로 죽는 것으로도 부족해 치료를 못 받아 숨지는 경우까지 생기니 금쪽같은 자식을 나라에 보낸 부모들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공군 제2방공유도탄여단 소속 서모 상병은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한 지 9시간 만인 지난 13일 새벽 숨졌다. 멀쩡한 자식이 귀대하자마자 숨졌으니 그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복통을 호소한 서 상병을 한 시간 뒤 국군강릉병원에 입원시킨 군의 첫 조치는 나무랄 데가 없다. 군 병원은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급성 맹장염으로 진단하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여기까지는 치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수술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은 게 문제였다. 서 상병은 수술 예정시간 다섯 시간을 앞두고 급성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군은 호흡곤란 상태에 빠진 서 상병을 인근 민간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이미 늦었다. 군은 서 상병 위에 음식물이 남아 있어 질식사 가능성 때문에 수술 시간을 늦춰 잡았다고 설명했으나 의학계에선 이번처럼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더 높을 경우 바로 수술한다고 한다.

군은 2011년 뇌수막염에 걸린 훈련병이 타이레놀을 처방받고 숨진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의료체계 혁신을 약속했다. 군의관의 의료 지식을 민간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최신 첨단 장비를 도입하겠다는 등 온갖 청사진이 제시됐다. 하지만 서 상병 사건에서 보듯 빈 수레만 요란했다. 서 상병이 처음부터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았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최소한 민군 병원 간 유기적인 협조체계만 갖춰졌어도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군에서는 ‘빨간약’과 파스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병사들은 적기에 올바른 진료를 받기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진료를 신청한 병사가 군의관에게 진료를 받기까지 1주일 넘게 걸리는 경우가 10%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심지어 한 달 이상 걸리는 경우도 4%에 이른다고 한다. 군 의료 예산은 전체 국방예산의 0.8% 수준으로 국가예산의 7%를 차지하는 민간의료 예산에 비해 턱없이 낮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군이 장단기 과제로 검토하고 있는 원격진료 도입, 군의관 수련제도 및 의료 협진체계 강화 등의 대책은 한낱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