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코미디 같은 ‘사이버 망명’이 實在하는 까닭

입력 2014-10-15 02:50
사이버 검열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검찰의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강경 방침으로 촉발된 이번 논쟁은 ‘사이버 망명’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다음카카오의 감청영장 불응까지 불러일으켰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13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7일부터 감청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실정법 위반이라면 대표이사인 제가 벌을 달게 받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대검의 발표로 ‘사이버 망명’이 260만명에 이르자 회원 이탈을 우려한 다음카카오의 초강수 대응이라 볼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실시간 감시를 우려한 국내 모바일 이용자들은 최근 한 달 사이 해외 메신저 프로그램 서비스로 대거 이탈하고 있다. 대화 내용이 암호화되고 서버를 외국에 둔 독일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텔레그램을 사용한 국내 이용자가 1주일 만에 2만명에서 25만명으로 급증하더니 현재는 260만명까지 늘어났다. 정치인, 경찰, 검찰의 가입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틀 뒤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신설한 데 이어 지난 1일에는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카톡 대화 내용을 사찰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사이버 검열 우려는 증폭됐다.

실제로 수사기관의 사이버 검열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메신저와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압수수색한 건수는 이명박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681건에 그쳤지만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지난해 1099건, 올 8월까지는 1240건으로 증가했다. 2012년에 비하면 배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래창조과학부의 인가를 거쳐야 하는 메신저·이메일의 패킷감청 설비도 지난해에 비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네이버 밴드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까지 들여다봤다는 폭로까지 터져 나오면서 검열 공방은 더욱 가열됐다.

사이버상의 무분별한 의혹 제기와 음해는 사회 혼란과 갈등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부작용을 양산한다. 불순한 의도나 범죄 혐의가 짙다면 수사기관은 당연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일상을 샅샅이 검열하고 감시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수사 당국이 보다 엄격한 감청 기준을 마련하고 그 집행도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다.

수사기관은 영장 청구를 신중히 해야 하겠지만 법원도 면밀한 법리 검토를 통해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 현재처럼 통신감청영장 기각률이 평균 4%에 그쳐서는 국민 인권은 보호받을 수 없다. 법원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운다는 심정으로 엄정하고 치밀하게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 명확한 영장 발부 기준도 제시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