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도청장치 설치 가능성에 전전긍긍

입력 2014-10-15 03:25
미국 정부가 뉴욕의 명물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사진)이 최근 중국 안방보험그룹에 매각되자 ‘보안 문제’로 신경이 곤두서있다고 AP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47층 높이로 우아함을 강조한 아르데코 양식의 이 호텔은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자주 묵었던 곳이다. 미국은 이 호텔 42층에 있는 스위트룸을 유엔 주재 대사 숙소로 50년간 사용해 왔다. 또 매년 9월 유엔 총회 기간에는 아예 2개 층을 통째로 빌려 워싱턴DC에서 오는 수백명의 자국 외교관을 위한 ‘본부’로 이용할 정도였다.

그런 호텔에 보안 문제가 불거진 것은 호텔을 인수한 안방보험그룹이 대규모 리노베이션(개보수)을 하겠다고 밝힌 뒤부터다.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중국이 호텔에 도청 및 사이버 염탐 장치를 설치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호텔을 인수한 사람은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 안방보험그룹 회장이다. 그는 덩샤오핑의 2남3녀 중 차녀인 덩난의 딸 덩줘루이(鄧卓芮)의 남편이다. 중국에선 모계 성(姓)을 물려받는 경우가 있어 덩줘루이는 외손녀임에도 외가 쪽 성을 택했다. 미국은 이 호텔 인수와 중국 정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커티스 쿠퍼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 대변인은 “현재 호텔 매각의 세부 사항과 (중국계) 회사의 장기 시설 이용 안에 대해 검토 중”이라면서 “보안 문제 등과 비용을 감안해 미 정부의 객실 임대 계약 갱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법은 대사의 주거지 임대 기간을 최대 10년 또는 그 이하로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미 국무부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과의 임대 계약은 내년까지지만 1년 또는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AP통신은 미국이 이 호텔과 임대 계약을 끝낼 경우 비용이나 유엔 본부와의 접근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고 소개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에도 보안 문제를 이유로 중국의 거대 IT 기업 화웨이의 제품을 국가 주요 시설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 중국 측의 반발을 샀다. 국무부는 그동안 중국 내 자국 외교관에게 호텔은 물론 택시, 사무실, 전화, 인터넷 등의 도청 등을 경고해 왔다. 쿠퍼 대변인은 “국무부는 직원과 업무 공간 관련 보안을 매우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안방보험그룹은 지난 6일 19억5000만 달러(약 2조800억원)에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매입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