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제2의 체 게바라

입력 2014-10-15 02:10

아르헨티나 상류층 집안 출신의 체 게바라는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 여행길에서 남미 민중의 피폐한 현실을 목격하고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내던지고 혁명에 뛰어든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는 권력을 거부하고 볼리비아 정글로 들어가 싸우다 볼리비아 정부군에 붙잡혀 1967년 39세에 총살당한다.

검은 베레모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르고 시가를 문 체 게바라는 가장 사랑받는 혁명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이 시대 가장 성숙하고 완벽한 인간”이라고 칭송했다.

체 게바라의 혁명 동지인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그림) 대통령은 남미 좌파 3인방으로 불렸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쿠바를 통치한 카스트로는 2006년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 사망설까지 나돌았으나 얼마 전 88세 생일을 맞으며 건재한 모습을 과시했다. 14년간 베네수엘라를 이끌었던 차베스는 지난해 3월 암으로 사망했다.

55세 독신으로 인디언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12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3연임에 성공하며 2020년까지 집권하게 됐다. ‘제2의 체 게바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그의 집무실 한 벽엔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모랄레스는 고교 2학년을 다니다 중퇴하고 목동, 벽돌공을 거쳐 코카잎을 재배하는 농민이 되면서 코카잎 재배농 이익단체를 이끌었다.

차베스가 야구광이라면 모랄레스는 축구광이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2008년 볼리비아 2부 리그에 소속된 볼리비아 경찰 산하의 축구클럽 리토랄과 계약을 맺고 축구선수로 뛸 정도다.

2006년 대통령에 첫 취임한 모랄레스가 3선에 성공한 것은 지난 9년간 매년 평균 5% 이상의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빈곤층 감소를 이뤄낸 덕분이다. 이념전쟁의 파고를 넘어선 지금 좌파든 우파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빵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