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3) 왼쪽 눈 시력 회복 중인 박대용 화가

입력 2014-10-15 02:34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에이원갤러리에서 만난 화가 박대용씨. 그는 지난 7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이곳에서 자신이 자란 남도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남도의 의경(意景)전’을 열고 있다. 갤러리엔 박씨가 사고를 당하기 전 그린 그림과 각막 이식 수술을 받고 만든 작품 등 총 21점이 전시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박대용(42)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화가의 꿈을 좇아 1993년 전북대 미대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벌이는 변변찮았지만 붓을 놓을 순 없었다. 박씨는 학원 강사로 생활비를 벌며 그림에 매진했다.

노총각으로 살던 박씨는 2년 전 배필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부는 전북 전주 전북도립국악원에 소속된 거문고 연주자였다. 박씨의 집이 전남 목포여서 ‘주말 부부’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기에 오히려 두 사람의 신혼은 누구보다 애틋했고 달콤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박씨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작업을 하다가 플라스틱 파편이 왼쪽 눈에 튀어 왼쪽 시력을 잃고 말았다. 화가인 그에겐 치명적이었다.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에 위치한 에이원갤러리에서 박씨를 만났다. 사고 경위부터 물었지만 그는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는 게 싫거든요. 많은 이들은 화가라고 하면 평화롭게 그림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현실은 다릅니다. 액자를 만들고 화판을 짜며 시끄러운 공장 같은 분위기에서 작업을 하지요. 이런 떠들썩한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났고요.”

박씨는 찢어진 각막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고 금세 호전될 거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한쪽 시력을 잃으니 예전처럼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화가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저는 붓 끝으로 그림을 그려요.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죠. 그런데 한쪽 시력을 잃고 원근감이 사라지니 그림 그리는 게 힘들더군요. 작품 활동은 계속했지만 화지에 붓이 닿을 때 ‘터치’가 달라지니 그림이 생각대로 그려지지 않았어요. 아내한테도 차마 사고 소식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시력을 잃고 한 달이 지난 뒤에야 겨우 소식을 전했습니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살던 박씨는 ‘주말 부부’ 생활이라도 청산하기 위해 지난 4월 전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전주 시내 유명 안과인 온누리안과에 각막 이식 신청을 했다. 그런데 신청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기증자가 나타났다. 곧바로 그는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물론 시력을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닙니다. 아직 왼쪽 눈으로는 세상이 뿌옇게 보입니다. 경과가 좋으면 앞으로 0.3까지 시력이 좋아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지난 7개월은 눈이 얼마나 귀중한지 절감한 시간이었습니다.”

박씨가 수술을 받는 데는 서울 구로구 베다니교회(곽주환 목사) 성도들의 도움이 컸다. 베다니교회 성도들은 보건복지부 장기이식등록기관인 ㈔생명을나누는사람들을 통해 수술비 300여만원을 후원했다. 형편이 어려운 박씨 부부에게 후원금은 적잖은 도움이 됐다.

“옛날부터 사후 장기기증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은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이번에 수술을 받자마자 사후 각막기증을 약속하는 서약에 참여했습니다. 아내한테도 동참하라고 말했는데, 아내는 이미 오래 전에 서약을 했더군요. 요즘엔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권유하고 다닙니다. 생명을 나누는 운동에 적극 동참하라고.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생명을나누는사람들 1588-0692)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이 캠페인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