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김밥가게 아줌마의 철학

입력 2014-10-15 02:20

새벽 수영을 하는 날이면 회사에 가기 전 작은 김밥가게에 들른다. 보통 때는 손님이 몇 있는데 그날은 나 혼자였다. “몇 시에 문 열어요?” 골목 귀퉁이 작은 가게라 게으름을 부릴 만도 한데 꽤 이른 아침부터 문이 열려 있었다. 주인아줌마는 보통 6시에 문을 열고 음식 재료를 손수 준비한다 했다. 꼬박 두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오늘처럼 일찍 끝나면 커피 마실 여유가 있어 즐겁다 했다.

또한 아줌마는 소량의 밥을 시간대별로 새로 하는데, 그 이유는 밥맛이 음식점의 기본이기 때문이란다. 물론 쌀도 중요해서 유기농으로 구입하고, 압력밥솥을 이용한다. 밥이 덜 됐을 때는 손님이 와도 밥 한 그릇 안 팔고 말지 이전 밥을 내놓진 않는다. 남편은 밥솥에 김이 나면 바로 열어 밥을 푸려 하지만 아줌마는 절대 그러지 못하게 한단다. “밥솥에 김이 나는 건 기다리라는 신호거든.” 아줌마가 말했다. “그 기다림을 잘 견디지 못하면 절대 밥맛 못 내지.”

오래된 건물들이 자리 잡은 좁다란 골목에, ‘아줌마 깁밥집’이라고 정직하게 쓰인 허름한 간판, 이른 아침 밥솥에서 내뿜는 하얀 김이 서린 창문,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 다섯 개의 테이블이 놓인 가게 안, 그곳에서 아줌마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아줌마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라면이 맛있다 칭찬하자 그녀는 ‘라면 끓이기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찬물에 넣고 그냥 끓여요. 그래야 더 맛있어. 사람들은 찬 물에 면 넣으면 안 되는 줄 알지, 그건 오해야. 찬물에 넣고 끓여야 더 쫄깃하고 맛있거든. 그러면 면이 불지 않느냐고 묻는데 면이 붇는 건 물이 끓고부터거든. 그러니까 내 말 들어봐요.” 그때 들어선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 “요 앞 2층에 만화가게 아줌마…” 하고 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살아가는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요 앞 만화가게가 2년 전에 문을 열었고, 그 옆 노점상 할머니가 며칠 전부터 다리가 아파 쉬고 있다. 회사와 집만 오갔다면 몰랐을 동네의 소소한 일들. 김밥가게 아줌마와 요구르트 아줌마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 지각을 했다.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