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벤츠’는 사기 힘들지만 너는 뽑아주마… 불황에도 잘 달리는 어린이 전동차

입력 2014-10-14 02:47
손자의 돌잔치를 앞두고 선물을 고민하는 김경희(60·서울 은평구 불광천길)씨에게 지난달 돌잔치를 치른 친구가 “벤츠를 하나 뽑아주라”고 귀띔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사줬던 장난감 자동차를 떠올린 김씨는 ‘벤츠 한 대로 되겠나. 서너 대 세트로 사주지 뭐’ 이렇게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물어 ‘아이들 벤츠’ 파는 곳에 갔다가 값을 듣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기적인 불황에도 지갑이 닫히지 않는 키즈 시장에서 어린이 전동차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SK 플래닛 11번가 장난감 담당 MD 김인선씨는 13일 “아빠가 선뜻 구매하지 못하는 고가의 수입 자동차를 자녀에게는 사주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유모차에 이어 어린이 승용완구가 부모들의 ‘세컨드 카’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11번가에서 올 1∼9월 가장 많이 팔린 어린이 전동차 모델 1위는 벤츠, 2위는 아우디, 3위는 BMW였다.

어린이 전동차 매출은 최근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11번가의 경우 2012년 전년 대비 10% 증가했던 매출이 지난해 22%, 올해는 10월 12일 현재 53%나 늘었다. 특히 지난 9월 한 달 동안에는 지난해 동기보다 124%나 급증했다. 옥션에서도 올 1∼9월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쿠팡에서도 6월 1일부터 10월 12일까지 어린이 전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4% 늘었다.

아이들이 직접 타서 운전을 할 수 있고, 부모가 리모콘으로 조정할 수도 있는 어린이 전동차는 20만원대부터 100만원대까지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차 값도 차 값이지만 이 차를 꾸미는 데 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튜닝 작업을 하는 데 적게는 10만원에서 100만원 이상 쓴다는 것. 어린이 전동차 전문 판매 업체 키즈카팩토리 최강석 대표는 “조명만 바꾸기도 하지만 엔진을 업그레이드해 속도를 빠르게 하고,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보통 어린이 전동차를 갖고 노는 연령은 돌부터 다섯 살 정도까지다. 그런 아이들이 엔진 성능이나 내비게이션의 필요성을 느낄 리 없는데도 부모들이 극성이다. 최 대표는 “고급 수입 유모차가 엄마들의 입김이 더해진 것처럼 어린이 전동차는 아빠들의 취미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통가에서 어린이 전동차는 ‘아빠들이 더 탐내는 장난감’으로 통한다.

생필품이 아닌 고가 제품의 경우 서울의 강남북, 도시와 지방에서 판매 편차가 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린이 전동차는 예외다. 서울 잠실과 경기도 일산·하남, 강원도 춘천 등에 판매장을 갖고 있는 최 대표는 “전동 자동차는 지역에 관계없이 고루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