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으로 낯선 남자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죄송한데, 프로필 사진이 본인 맞아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렇다고 했더니 ‘가슴이 크네요’ ‘어디 사세요’ 하면서 성적인 대화를 막 늘어놓는 거예요…. 너무 당황해서 한참 (언어 성희롱을) 당하다가 차단했어요.”
서울대 기초교육원 김수아 교수는 지난 5월 온라인에서 여성이 겪는 인권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심층면접에 응한 한 여성이 이런 경험을 털어놨다. 다른 여성은 페이스북을 이용하면서 황당했던 기억을 얘기했다.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렸어요. 제 얼굴이 나오는 일상적 영상인데, 어느 날 친구가 제 영상을 ‘19금’(성인물을 뜻하는 말) 페이지에서 봤다는 거예요. 그 페이지에 가보니 제 영상을 퍼다 놓고 ‘이 여자 갖고 싶은 분, 좋아요 누르세요’라고 써놨더라고요.”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4일 ‘여성의 온라인 인권피해 현황과 개선방안’을 주제로 개최하는 여성정책포럼에서 김 교수는 15∼4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14명 심층면접 결과를 발표한다. 13일 배포된 발제문을 보면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의 85.4%가 스토킹, 성폭력, 명예훼손·모욕, 영상 유포 등 온라인 인권침해를 한 번 이상 당한 적이 있었다. 스토킹은 69.9%, 성폭력은 67.4%, 명예훼손·모욕은 35.5%, 영상 유포는 2.6% 순으로 나타났다.
낯선 사람의 사적인 메시지가 지속적인 성희롱이나 협박으로 이어지는 스토킹 피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34.5%)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온라인 성폭력은 ‘성적 욕설이 담긴 메시지’ ‘외모나 신체를 대상으로 한 불쾌한 메시지’ ‘원치 않는 음란물 전송’ ‘성적 대화(채팅) 요구’ 등의 형태로 벌어졌다. 이런 성폭력은 주로 메신저(34.2%)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한 남성은 온라인 스토킹·성폭력이 만연한 이유와 관련해 “여자 꾀는 게 온라인에선 훨씬 쉬워요. 낯선 여성한테 ‘오늘 저랑 술 한 잔 할래요?’라고 면전에서 말하긴 어려워도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론 부담 없이 할 수 있거든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성도 온라인 인권침해 유형 중 하나 이상을 경험한 비율이 84.4%로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이 성적인 피해를 많이 당한 반면 남성은 명예훼손이나 모욕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피해 여성은 마땅한 대응 법을 몰라 SNS나 메신저 이용을 중단하는 소극적 대처에 그치곤 한다. 용기를 내서 경찰에 신고해도 가해자나 사이트 운영자에게 즉각 제재가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수연 센터장은 “온라인 성폭력을 경찰청 업무로 명시하고 근거 법령을 정비하는 한편, 외국 SNS 업체의 국내 자회사도 온라인 자율규제기구인 KISO(한국인터넷자율기구)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3명 중 2명 온라인 스토킹·성폭력 경험
입력 2014-10-14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