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중국 멤버의 연이은 소속사 이탈… 아이돌판 ‘먹튀’?

입력 2014-10-14 02:35

[친절한 쿡기자] 1년 땀 흘려 농사지은 쌀을 깨끗이 씻어 밥을 지었습니다. 따끈따끈 김이 나는 밥에 막 숟가락을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릇을 채갑니다. 눈이 휘둥그레져 보니 중국인이 내 밥그릇을 들고 웃고 있군요. K팝 스타들을 노리는 중국 연예시장 이야깁니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중국인 멤버 루한(24)이 지난 10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앞서 동료였던 크리스(우이판·24)가 같은 소송을 낸지 5개월 만입니다. SM 소속이었던 슈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 한경(30)도 같은 방법으로 탈퇴해 중국에서 활동 중이죠.

단순하게 보면 해외 멤버들이 소속사와의 갈등을 빚고 탈퇴한 것 같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K팝 아이돌 그룹들은 현지화를 위해 해외 국적의 멤버들을 꾸준히 영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현지 기획사의 유혹에 빠져 이탈하는 것이 사안의 핵심입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계 스타들의 이탈이 두드러집니다. 중국 연예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때문입니다. 넘쳐나는 수요에 비해 중국의 ‘스타 만들기’ 시스템은 아직 미흡합니다. 자연스레 이미 완성된 스타를 영입하는 것에 눈을 돌리게 됐죠. 한국의 K팝 콘텐츠 노하우를 익히며 인지도를 얻은 중국인 스타들을 데리고 가 흥행시키는 겁니다. 이는 비단 SM만의 문제가 아니라 K팝 시장 전체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외국인 멤버들이 소송을 내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국내 기획사는 해당 멤버를 현지에서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계약무효 소송은 민사소송이기 때문이죠. 국내에서 승소한다면 결과를 근거로 현지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몇 년이 걸립니다. 그 동안 이탈한 멤버가 활동하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크리스는 소송을 제기한지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중국 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현지에서 배우로 활동 중입니다. 크리스의 공식 연습기간과 활동기간은 약 5년입니다. 5년을 힘들여 키웠더니 결실을 맺을 때가 되자 중국에서 채간 것이죠.

이제 국내 기획사들은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경과 크리스를 맥없이 놓친 SM은 지난달 중국 미디어아시아그룹과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중국 현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독점 매니지먼트 권한을 부여하는 대신 이탈한 멤버들의 현지 활동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이죠. 미디어아시아그룹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 방송출연 등을 제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루한은 중국에서 크리스 만큼 편안하게 활동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금도 외국인 멤버를 가진 많은 기획사들이 대응책을 강구 중입니다. 뾰족한 대응책은 당장 찾아내기 힘들겠지만 다 지어놓은 밥을 계속 뺏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