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를 먹다가/ 하늘에 계신 어른께선/ 무얼 잡수고 계시나 했더니/ 아랫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까치가 쪼다 만 홍시만 골라/ 오물오물 드시고 계시네.”(‘눈이 오시는 날’ 중)
김형영(70·사진) 시인의 ‘눈이 오시는 날’은 스승 서정주(1915∼2000) 시인을 그리며 쓴 시다. 노시인은 새해 문안인사를 하러 온 제자에게 홍시를 건넨다. 스승은 까치가 먹다가 만 홍시를 먹고 있었다. 제자는 20여년이 지났지만 홍시와 함께 덕담을 건네던 스승을 잊을 수가 없어 시를 썼다.
김형영 시인은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 관악구의 이웃에 살면서 고민이 있으면 늘 찾아뵙고 여쭤봤는데 이제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의 호가 미당(未堂)인데 ‘덜 된 집’이란 뜻이다. 세상은 선생님이 친일파였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분은 늘 소처럼 시를 되새김질하면서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1966년 ‘문학춘추’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앞두고 아홉 번째 시집 ‘땅을 여는 꽃들’(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시인은 “내년이 등단 50주년인데 그동안 시집을 아홉 권 냈으면 부지런히 쓴 것은 아니다”고 했다. 최근 5년간 쓴 시 가운데 53편을 추려 묶은 이번 시집에는 관악산을 오가며 깨달은 자연의 이치,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 등이 담겨 있다. “산에 있는 돌멩이도 나보다 지상에 오래 머물 존재라고 생각하면 돌멩이를 발로 차기도 미안하다”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운율과 회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시집에는 소설가 최인호를 그리워하며 쓴 시도 있다. “오십 년을 그대는 별이었고/ 오십 년을 그대는 꽃이었고/ 글만 써서 살 수 없는 길을/ 이 땅의 작가들에게 열어준 그대,/ 그리운 벗이여!/(중략) 이제 훌훌 벗어놓으시고/ 그대의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시게.”(‘I love you’ 중)
가톨릭에 귀의한 고인의 대부(代父)였던 시인은 “인호는 오랜 친구다. 정말 많이 생각난다”고 애틋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칠십년대’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은 시집 ‘침묵의 무늬’ ‘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 등의 시집을 냈고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육사시문학상, 구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미당은 늘 소처럼 시를 되새김질해” 스승 그리며 시집 낸 김형영 시인
입력 2014-10-14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