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인의 한국 사랑을 안내합니다”

입력 2014-10-14 03:51
최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만난 양화진안내봉사팀 멤버 정윤복 집사, 조홍연 권사, 강예빈 권사, 윤영애 집사(왼쪽부터). 이들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선교사묘원에서 안내 봉사를 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허란 인턴기자
최근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찾았을 때 한 선교사 묘역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묘역으로 다가가니 중년 참배객 20여명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사진을 찍은 자리. 참배객 중 일부는 선교사의 묘소를 밟거나 비석에 기대 포즈를 취했다.

참배객들이 자리를 뜨려던 순간 연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여성 4명이 달려왔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묘소) 위에서 사진 찍은 분들이 누구죠? 벌금 물릴 거예요."

참배객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곤 총총히 묘역을 떠났다. 유니폼을 입은 여성 4명은 울상을 짓고 긴 한숨을 토했다. 이들은 참배객 안내를 맡은 양화진안내봉사팀 멤버들이었다. 참배객 발길이 뜸해진 이날 오후 이들을 인터뷰했다. 안내팀장인 정윤복(56) 집사와 매주 목요일 오후 안내 봉사를 하는 조홍연(69) 권사, 강예빈(64) 권사, 윤영애(60) 집사였다. 이들은 선교사묘원 인근에 있는 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 성도들이었다.

“선교사묘원은 거룩한 땅입니다. 저희가 마음을 다해 봉사를 해서인지 참배객도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는 참배객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큰 기쁨을 느낍니다. 아마도 이런 기쁨은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상급’이겠지요(웃음).”(정 집사)

선교사묘원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와 복음을 전파한 외국인 선교사들과 이들의 가족 145명이 안장된 곳이다. 100주년기념교회는 2005년 9월 선교사묘원의 법적 관리권을 위임받았고, 이듬해 9월부터 성도들로 봉사팀을 만들어 참배객을 상대로 ‘무료 안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정 집사의 설명처럼 참배객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안내 서비스 시작 이듬해인 2007년 참배객은 2만4078명이었지만 지난해 8만4123명까지 늘었다(표 참조). 올해 6월 안내 서비스 시작 이후 누적 참배객이 5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봉사팀은 50만명 돌파의 숨은 주역이다.

이날 만난 조 권사와 강 권사는 2006년 9월부터 봉사에 참여한 봉사팀의 ‘원년 멤버’였다. 윤 집사와 정 집사는 2009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현재 봉사팀원은 130여명에 달한다. 평일 봉사팀엔 60대 이상 장년층이 많지만 토요일 봉사팀엔 20∼30대도 적지 않다.

“10대 단체 참배객 중에는 묘원에 와서 친구들과 떠드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학생 중에도 눈빛이 다른 애들이 있습니다. 뭔가를 느끼고 있는 거죠. 그런 애들을 볼 때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연로한 분 중엔 참배를 하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많고요.”(조 권사)

“저희 어머니는 외국에서 온 선교사님을 통해 처음 주님을 만났어요. 저는 그런 어머니 덕분에 신앙을 갖게 됐고요. 선교사묘원에서 봉사를 하다 보면 ‘이곳에 안장된 분들 덕택에 내가 예수님을 만나게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을 받을 때가 많지요.”(윤 집사)

“여름이나 겨울엔 봉사를 하며 힘들 때가 많습니다. 묘역 주변에 그늘이 없어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강변인 이곳에 바람이 정말 세게 불거든요. 하지만 봉사팀 활동은 현재 제 삶의 활력소입니다. 아직도 봉사하기 전날인 수요일 밤이면 설렘 때문에 잠이 잘 안 와요(웃음).”(강 권사)

언제까지 봉사팀 활동을 하고 싶은지 묻자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양화진에서 선교사들이 남긴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봉사팀원들과 있으면 많은 자극을 받아요. 이분들로부터 많은 걸 배웁니다.”(윤 집사)

“봉사팀 활동은 계속할 겁니다. 봉사팀에서 ‘이제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으니 집에서 쉬시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하겠지만(웃음).”(강 권사)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