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경기도 화성시 자동차안전연구원 주행시험장. 사람이 타지 않은 주황색 벨로스터 한대가 차로에 진입했다.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서 정확히 멈춘 차는 전방에 다른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교차로를 지났다. 중간에 차로를 이탈하거나 도로 턱 위로 올라가는 등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9가지 임무를 완수하는데 걸린 시간은 8분16초. 사람이 운전했다면 5∼6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스스로 운전대를 휙휙 돌려가며 완주한 차를 향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안전 위해 시작됐다=주황색 벨로스터는 카이스트 대학생·대학원생들이 만든 자율주행 시험 차량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10년부터 2년마다 개최하는 자율주행자동차 경진대회에 출품된 작품이다. 올해 대회에는 12개 팀이 참여했고, 한양대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대학생들의 자율주행 기술은 대회를 치를 때마다 발전하고 있다는게 현대차 관계자의 귀띔이다. 물론 기존 자동차 제작사의 기술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자율주행 차량 시대에 대비해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자율주행 차량은 ‘주변상황과 차량상태를 인식해 교통규제에 따라 안전한 자동운전이 가능한 차량’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무인자동차와는 다르다. 무인차는 주로 군사적 임무 수행을 위해 개발된다. 재난지역 탐사, 외계 행성 탐사 등에 쓰이는 차가 무인차다. 반면 자율주행 차량은 운전자의 탑승을 전제로 한다. 영어로도 ‘self-driving car’로 표현하는게 일반적이다.
자율주행 차량은 ‘안전’에서부터 출발했다. 사람의 편리보다는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목적이 더 크다는 얘기다. 교통사고는 대부분 운전자의 실수로 일어난다. 인간의 실수를 ‘똑똑한 기술’로 막아보겠다는 게 자율주행 차량의 시작이다.
◇구글이 기술 선도 중=아직 완벽한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한 곳은 없다. 가장 앞서있다고 평가받는 건 자동차 제작사가 아닌 IT업체 구글이다. 구글은 100여개의 시제품 차량으로 실험을 진행해왔으며 지난 5월에는 아예 운전대와 가속·브레이크 페달을 떼어낸 차량을 선보이기도 했다. 구글의 무인자동차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70만 마일(약 112만㎞) 이상의 도로에서 시험을 거쳤다.
구글의 자율주행 능력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제안한 자율주행 0∼4단계 가운데 3단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스템이 스스로 주행환경을 인식하고 차량을 제어하지만 돌발 상황에는 운전자가 개입해야 하는 단계다.
자동차 업체 가운데는 메르세데스-벤츠와 볼보, 아우디, 도요타가 다소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닛산도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고 지난해 밝혔다. GM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메리 바라는 지난달 준(準)자율운전 시스템을 캐딜락에 적용해 2017년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는 고속도로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으며 2016년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제네시스에 자율주행 기술의 하나인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을 탑재했다. 앞차를 따라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주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100% 자율주행 가능할까=일부에선 2025년 이후 자율주행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만 넘어야할 산은 많다. 우선 기계 자체의 결함 가능성이 해소돼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리콜 발표가 이뤄지고 있는게 자동차 업계의 실상이다. 비용도 문제다. 자율주행 차량에는 카메라와 레이더, 음파 탐지기 등 값비싼 장치가 잔뜩 부착된다. 자동차 관련 법규도 바뀌어야 한다. 예컨대 미국은 상당수 주에 ‘기어 P는 사람이 해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최근 업체들의 로비로 해당 규제가 풀어지고 있는 추세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책임이 탑승객에 있는지 제작사에 있는지 등도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자율주행 차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자율주행 차량을 믿었다가 사고가 날 가능성이 0.00001%라도 존재한다면 이 차를 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봉철 현대차 자율주행기술(ADAS) 제어개발팀장은 “고객들이 자율주행 차량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다른 업체보다 먼저 자율주행 차량을 내놓아야할지 수요가 폭발하는 시점에 맞춰야할지 고민이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세계는 ‘알아서 가는 車’ 개발 경쟁
입력 2014-10-15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