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이자 의사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율 분)의 실험 중 탄생한 피조물(박해수 분). 무대 바닥에 척 들러붙어 있던 육체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다 기고 일어서고 걷는다. 인간과 닮은 ‘괴물’의 탄생. 인간과 비슷하지만 흉측한 모습의 피조물을 보고 사람들은 도망친다.
피조물을 만나준 사람은 눈이 먼 중년 여성 드 라쎄(정영주 분)뿐이다. 그에게 말과 글, 세상의 이치와 삶의 의미를 배운 피조물은 영국의 문호 밀턴(1608∼1674)의 실낙원을 읽고,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된다.
1818년 영국의 작가 메리 셸리(1797∼1851)가 쓴 최초의 SF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이미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창조됐다. 탄탄한 줄거리와 생동감 있는 캐릭터의 힘으로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이번엔 연극으로 재탄생해 지난 10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간 버려진 피조물이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가 주로 다뤄졌다면 이번 작품은 버려진다는 아픔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극을 이끌었던 것과 달리 피조물이 극 중심에 우뚝 서있다.
“왜 날 만들었냐”는 절규 속엔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사랑, 타자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하는 공동체성이 보인다. 만든 이를 궁금해 하고 그를 찾아 여정을 떠나는 피조물.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한다는 상실감에 만든 이를 죽이려 하면서도 그에게 끝까지 자신을 이해시키고 싶어 하는 마음. 극 중 피조물은 포장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보이는 거울이다.
반면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가며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고 절규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매개다.
120분간 쉬는 시간 없이 촘촘히 쏟아내는 주연 배우의 연기가 볼 만하다. 연극 무대로는 다소 넓은 공연장이기에 장악력은 떨어지는 듯하지만 몰입시키는 힘이 돋보인다. 랩으로 둘러싸인 무대 장치와 이동 세트는 음산한 느낌을 확실히 표현한다.
작품은 2011년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에서 초연됐다. 영화감독 대니 보일(57)이 연출했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국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38)가 출연해 각종 국제 연극상을 휩쓸었다.
국내 무대는 뮤지컬 ‘서편제’의 조광화 연출(49)이 작업했고 배우 박해수(33), 이율(30), 정영주(43) 등이 출연한다. 정영주는 드 라쎄 역과 프랑켄슈타인의 어머니인 마담 프랑켄슈타인 등 1인 2역을 소화한다. 다음달 9일까지 3만∼6만원(02-766-6007).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숨죽인 120분 주연 배우의 연기 볼 만… 연극으로 본 ‘프랑켄슈타인’
입력 2014-10-14 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