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이동통신사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통 3사 간에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이 없어지면서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반면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스마트폰이 오히려 비싸졌다며 최신폰 구입을 꺼리고 있다. 제조사들은 반토막 이하로 떨어진 판매량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통사들에 명분과 실리 준 단통법
올해 초 방송통신위원회는 이통 3사가 쓰는 보조금의 평균치가 42만7000원이라고 발표했다. 단통법 시행 이전 가이드라인 27만원을 15만원가량 초과하는 금액이다. 틈만 나면 ‘보조금 대란’으로 서로 경쟁한 탓이다.
이통사의 보조금과 제조사의 장려금을 기준보다 많이 퍼준다고 해서 소비자들에게 나쁜 건 없다. 문제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정보에 빠른 일부가 혜택을 독점하고, 노년층이나 지방 소도시 가입자들은 차별받는 ‘호갱님’으로 전락한다는 게 단통법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때문에 이통사에 단통법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는 ‘신의 한 수’였다. 보조금이 투명해지면 서로 보조금 싸움을 할 필요가 없게 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고객을 차별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은 “단통법 시행으로 음성적 보조금 지급 관행이 사라지고 마케팅 비용이 예측 가능해진 점은 다행이지만 전체 보조금 규모는 과거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보조금 축소로 이통사가 이득을 얻는다는 건 오해”라고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후 미래창조과학부와 방통위가 정한 보조금 상한선이 30만원임에도 이통사들은 최신폰에 10만원 안팎의 보조금만 책정했다. 게다가 이 보조금은 이통사의 최고가 요금제를 사용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액수다. 이통사들은 점차 보조금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증권사들은 마케팅 비용이 감소하고,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라며 일제히 이통 3사의 실적개선을 예상하고 있다.
소비자가 이득을 볼 기회 원천봉쇄
미국에선 아이폰6 16GB 모델을 2년 약정으로 199달러(약 21만원)에 살 수 있다. 아이폰6의 공기계값은 미국에서 649달러다. 보조금이 450달러 지급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본에선 아이폰6 16GB 모델은 2년 약정하면 기계값이 공짜다. 이통사 간 가입자 유치 경쟁이 심하고, 보조금 사용도 자유롭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이폰6를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 보조금 상한선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아이폰5s 16GB 모델은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이 16만6000∼26만7000원으로 책정돼 있다. 출고가가 81만4000원이라 실제 구매 가격은 50만원 중반 이상이다. 아이폰6에 비슷한 보조금을 준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선 50만∼6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 국민을 ‘호갱님’으로 만들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당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이통사의 담합을 돕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통사 관계자는 “해외와 우리나라의 요금 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면서 “국내의 경우 2년 약정 시 요금 할인이 추가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드는 비용은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 규모가 달라지면서 요금제를 낮추면 기존에 받았던 할인액을 반납해야 하는 등 예전보다 할인 제도가 복잡하고 불리해졌다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높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 판매량 급감 울상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은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제조사들은 이통사들의 보조금 경쟁에서 촉발된 단통법으로 인해 제조사와 소비자, 유통망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 단통법 시행 이후에도 출고가 인하만 요구하는 등 비싼 통신요금을 제조사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에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동안 이통사들은 제조사의 최신폰으로 가입자 유치 경쟁을 해왔다. 국내 이통3사는 지금까지 서비스 경쟁을 하기보다는 피처폰 시절엔 제조사로부터 단말기를 독점 공급받아 경쟁력으로 삼았고, 스마트폰 시대에는 보조금을 무기로 고객을 끌어들였다. 지금도 이통 3사는 비슷한 수준의 요금제와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보조금 규모가 너무 적은 것도 문제다. 미국이나 일본의 아이폰 판매에서 보듯 투명성만 전제된다면 보조금은 많을수록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 한때 보조금 기준이었던 27만원은 피처폰 시절에 정한 기준이다. 보조금이 많아야 30만원인 상황에서 분리공시를 해봐야 실익이 없다는 게 제조사들의 입장이다. 보조금이 비현실적으로 적은데 누가 얼마를 썼는지 감시하는 건 소비자 이익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본인이 얼마나 할인을 많이 받고 혹은 적게 받고 있는지가 궁금하지, 누가 할인을 제공하는지는 본질을 벗어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통신요금 절감을 위해 제조사들의 출고가 인하뿐 아니라 이통사들의 요금인하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요금은 스마트폰 가격과 이통사의 통신요금으로 구성되는데, 그동안 스마트폰 가격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단통법 때문에” 소비자 분통… 제조사 고통… 이통사 無痛
입력 2014-10-13 03:00 수정 2014-10-13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