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꾸로 화가”… 현실 부정하는 화단의 ‘반항아’

입력 2014-10-14 02:55
붉은 헝겊이 공중에 날리는 모습을 영상에 담은 이승택의 1971년 작품 ‘바람’. 형태를 중시한 당시 미술계를 거부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1960년대 작품 '묶인 돌'. 한국 전통 농기구인 고드렛돌에서 영감을 얻어 단단한 돌을 말랑말랑한 물성으로 바꾼 작업이다. 갤러리현대 제공
한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설치미술가 이승택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 본관 1층에 거꾸로 매단 자화상 조각과 함께 적어 놓은 문구다. 한국 최초의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설치미술가 이승택(82)은 스스로를 '거꾸로 작가'라고 칭한다. 대학 시절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매사를 뒤집어보고 현실을 부정하는 게 평생 몸에 뱄다고 한다.

홍익대 조소과 2학년 때인 1955년, 국전에 받침대 하나에 조각상 2점을 얹었다가 출품을 거부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1좌대 1작품’이 관례였다. 1960년대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조각가 자코메티의 앙상한 뼈 작품을 접하고선 뼈마저 없애버린 형체 없는 작품을 생각했다. 특정 사조에 휩쓸리고 형태를 중시하는 기존의 미술계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뉴스에서 공장 굴뚝 연기와 불기둥이 나오는 영상을 봤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찾고 있던 형체 없는 작품이 아닌가. 이는 1956∼60년 사이의 불, 물, 바람, 연기, 구름, 안개 등을 활용한 이른바 ‘비조각’ 또는 ‘비물질’ 작품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앞서간 탓일까. 미술계 주류로 편입되지 못하고 50년간 재야 작가로 살았다.

인물 조각에 남다른 손재주를 가진 그는 이 작업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 서울 강남 도산공원의 안창호 선생 동상 등이 그의 작품이다. 초상 조각으로 생계를 이어간 그는 작업에 있어서는 한결같이 부정과 저항의 정신을 고집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면서부터.

이후 해외 미술계가 그를 주목했다. ‘세계 미술계 파워 1위’에 오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는 이승택을 ‘세계 미술사에 남을 독자적인 작가’로 평가했다. 런던 테이트모던은 그의 1960년대 작품 ‘묶인 돌’을 소장했다. 한국 전통 농기구인 고드렛돌에서 영감을 얻어 딱딱하고 무거운 돌멩이를 물렁물렁하고 가볍게 보이도록 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찬밥 신세를 받다 요즘 해외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작가는 ‘거꾸로’라는 타이틀의 이번 개인전에 영상, 설치, 회화, 조각 등 10여점을 내놓았다. 밧줄을 이용해 전시장 벽면에 그린 드로잉, 미로의 거울에 반사돼 신비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나무숲, 돌을 철사로 묶은 돌 등을 선보인다. 불타는 화판이 강에 떠내려가고, 붉은 천이 바람에 펄럭이는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은 처음 공개된다.

작가는 15일부터 19일까지 런던에서 열리는 프리즈 아트페어 마스터스 섹션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초청돼 개인 부스에 대표작을 출품한다. 같은 기간 10여명의 국제적인 작가만 선정해 전시하는 프리즈 조각공원에서도 설치 작품 ‘삐라’를 선보인다. 함경남도 고원 출신으로 실향민 작가의 반전 메시지를 담은 6∼7m 대형풍선 작품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현대미술은 고도의 지적 놀이인데 우리 작가들은 미술사조에만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며 “나는 사조와 무관하게 독자성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걸어왔고, 그런 실험성이 새삼 주목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의 작업을 알아보지 못한 국내 평단에 대해서는 “무식하니 알아볼 수가 있나”라고 비꼬았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02-2287-35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