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이란 여성 곤체 가바미(25)는 이란의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의 독방에 수감돼 있다. 그녀는 지난 1일부터 단식도 벌이고 있다. 여성 인권운동가인 그녀는 지난 6월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경기장에서 열린 이란 대 이탈리아 남자 배구 시합을 보러 들어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란의 이슬람 법령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성들이 많이 오는 체육시설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없게 돼 있다.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세력 보코하람은 지난 4월 나이지리아 동북부의 한 여학생 기숙학교에 쳐들어가 여학생 200명 이상을 납치했다. 보코하람은 납치 뒤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다. 여학생들은 교육 대신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노벨상을 수상한 파키스탄의 10대 여성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는 2012년 10월 파키스탄 북서부 스와트 계곡에 살고 있었다. 말랄라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버스로 귀가하던 중 탈레반 병사에 의해 총상을 입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2007년 이곳을 장악한 탈레반은 모든 여성의 외부활동을 금지하고 여학교를 강제로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먼 거리에 있는 다른 지역 학교에 열성적으로 다니는 말랄라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세 사건이 일어난 공통적인 배경에 이슬람 원리주의(근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요즘 글로벌 사회의 최대 안보위협이 되고 있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의 ‘이슬람국가(IS)’ 역시 ‘철저한 이슬람 원리주의 적용’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테러와 참수, 인종학살 등 과격주의를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동원되고 있다. 도대체 이슬람 원리주의가 어떻게 이런 반인륜적인 행동들을 정당화시켜주는 도구가 된 것일까.
◇원리주의 태동시킨 와하비즘(Wahabism)=IS는 자신들의 주장 배경에 ‘와하비 스승들의 가르침’인 와하비즘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와하비즘은 사우디 출신 신학자인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1703∼1745)이 창시한 이슬람 사상이다. 핵심은 이슬람 원리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와합은 13세기 이슬람 학자인 이븐 타이미야(1263∼1328)의 원리주의를 발전시킨 인물이다. 십자군 원정과 몽골의 침략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슬람 사회가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 시절의 원리주의로 되돌아가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또 이슬람 이외의 외부 체제를 배격해야 한다는 게 이븐 타이미야의 핵심 주장이다.
와합은 이를 더 구체화시켜 무함마드 이외의 우상숭배 및 외부 정치체제 배격, 음주 도박 간통 등 금지, 여성의 외출 및 사회활동 제한, 엄격한 종교적 생활 등을 구체적 덕목으로 제시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단체 무자히딘이 대표적인 와하비즘 추종자로 알려져 있다.
와하비즘은 보코하람 등 아프리카의 이슬람 무장단체와 IS와 알카에다 등의 중동지역 무장단체, 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등의 세력에게 여전히 강력한 지배 사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와하비즘을 무장투쟁으로 발전시킨 사이드 쿠틉=국내 중동 분야 권위자인 한국외대 서정민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번역서인 ‘진리를 향한 이정표’(사진)에서 “와하비즘에 기반해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의 실천적 지침서를 만든 사람이 사이드 쿠틉”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쿠틉(1906∼1966)은 이집트의 지식인이자 이집트 과격주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의 핵심 지도부 출신이다.
‘진리를 향한 이정표(Signpost on the Road)’는 쿠틉이 무슬림 형제단 활동으로 구속돼 옥중에서 쓴 이슬람 교리서인 쿠란 해설서이자 이슬람 교도로서 행해야 할 생활지침서다. 그는 쿠란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은 현대사회의 방종한 삶의 모습을 ‘자힐리야’로 규정하고, 이 자힐리야를 없애기 위한 지하드(성전)를 촉구한다. 장학사 출신으로 미국 유학도 다녀왔던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물질만능 및 성적 타락, 빈부격차 등을 대표적인 자힐리야의 예로 거론했다.
특히 이런 서구사회가 이슬람 사회를 지배하려 하고, 친서방적인 인사를 지배자로 앉히고 있다면서 이를 척결하고 금욕적인 초기 이슬람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무장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쿠틉의 이 사상서가 이슬람 무장단체들에 의해 확산되자 이집트 정부는 1966년 8월29일 그를 교수형에 처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순교’로 칭송되면서 이슬람 과격 전사들의 투쟁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됐다.
알카에다를 창설한 빈 라덴에게 서구사회를 향한 무장투쟁론을 직접적으로 주입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쿠틉의 친동생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압둘아지즈 대학의 무함마드 쿠틉 교수다. 빈 라덴 사후 알카에다를 이끌고 있는 공동창설자인 알 자와히리가 “쿠틉의 메시지가 국내에서 외국에서 이슬람의 적들에게 대항하는 이슬람 혁명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지켜 올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무장투쟁의 국제화 양상에 대해 서 교수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듬해인 1991년에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면서 이슬람 과격 운동은 국제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위치한 사우디에 기독교를 사실상의 국교로 삼고 있는 패권국가 미국의 군대가 주둔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슬람 과격 세력을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결국은 공존을 부인한 편협한 배척주의=와하비즘이나 쿠틉의 사상은 결국 다른 종교나 타 문명을 절대 용인치 않겠다는 철저한 유일신교에 다름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를 확산시키는데 방해물이 있으면 모든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척결해도 된다는 극단주의적 발상은 반인륜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애를 다뤄야 하는 최소한의 종교적 가치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들 사상을 더욱 극단적으로 해석해 폭력을 일삼는 IS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말 IS와 같은 수니파 성직자(이맘) 126명이 IS의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IS의 행동은 이슬람과 이슬람교도, 전 세계에 대한 큰 잘못이자 모욕”이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슬람 성직자들은 특히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일을 그만두고 자비의 종교로 회귀하라”고 촉구했다. IS 같은 과격 무장단체들은 결국은 이슬람내 사이비 종교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이슬람 내부 사회의 주된 평가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이슬람 테러 뿌리는 와하비즘… “참수·인종학살 정당화”
입력 2014-10-14 0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