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닫고 몸으로… 마임은 여백의 예술”

입력 2014-10-14 02:57
광대의 삶을 표현한 김찬수의 공연 ‘더 클라운(The clown)’의 한 장면. 한국마임 2014 제공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사에서 만난 세 명의 마임이스트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열, 김찬수, 이정훈. 박효상 기자
공간도 언어도 소품도 필요 없다. 그저 배우의 몸 하나에 의지해 극을 이끈다. 길거리든, 좁은 소극장 무대든, 화려한 대극장 무대든 이들에겐 같은 무게의 '무대'일 뿐이다. 지난 11일부터 3주간 매주 토요일,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아르코예술극장 인근 야외와 정보소극장에서 마임 축제 '한국마임 2014'가 열린다. 지난 1989년 시작해 올해로 26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마임이스트'들이 신작을 발표하는 무대이자 갈고 닦은 실력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번지다: 감각을 둘러싼 차이, 교감 그리고 공존’이란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축제엔 태국의 마임 듀오 ‘뮤트’, 일본 배우 나가이 나오키도 방한한다. 국내에선 여전히 생소한 직업인 마임이스트는 마임을 전문적으로 하는 배우를 뜻한다.

올해의 ‘선정 아티스트’로 꼽힌 마임이스트 이경열(46) 이정훈(42) 김찬수(38)를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사에서 만났다. 세 사람은 이번 축제 기간 중 15∼17일 주부와 노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마임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연다.

11일과 18일 이정훈은 ‘빈대떡 신사’를, 22일에는 김찬수가 ‘더 클라운’을, 이경열이 ‘하우쓰!’를 선보인다. 세 사람 이외에도 30여명의 마임이스트들이 축제 기간 18편의 다양한 공연을 올린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부터 댄스, 서커스 등이 접목된 색다른 마임 공연이 이어진다.

‘가만히 있으라’(김성연), ‘안녕… 안녕’(이경식, 김도형) 등 세월호 침몰 사태를 두고 만들어진 작품 등 우리네 일상을 위로하고 공감하며 희망을 이야기하겠다는 포부다.

“빈대떡 신사는 요즘 시대 젊은이들이 느끼는 씁쓸함과 애환, 회사원과 중년층 등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비 오는 어느 날 막걸리 집에서 만난 50대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품을 구상했어요.”(이정훈)

김찬수의 ‘더 클라운’은 관객 앞에서 웃음을 나눠주는 광대의 두터운 분장 뒤 자괴감과 슬픔을 보여주는 양면적인 작품이다. 이경열의 ‘하우쓰!’에선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아 집을 표현한다.

마임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생소한 장르 중 하나다. 김찬수는 “국내에 마임 전문 교육과정이나 자료가 부족한 현실”이라며 “줄 당기기, 벽 짚기 등 기초 기술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마임은 어느 공연보다 메시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풍자의 장르”라고 설명했다.

세 사람은 연극배우로 공연계에 들어섰다가 10여 년간 마임에 푹 빠져 지냈다. 마임 축제의 대표격인 ‘한국마임’이 지난 26년간 이어져왔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말을 꺼냈더니 세 사람 모두 “그간 배곯고 관객들에게 외면을 당한 적이 많았다”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마임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이경열은 “마임은 여백이 있는 수묵화”라며 “다른 장치 대신 마임이스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섬세함이 가장 극적으로 그려진다. 여백에서 관객들이 자신들이 느끼고자 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다”고 표현했다. 김찬수는 “몸짓을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 없다”며 “국악으로 대표되는 우리 리듬을 이용해 동양의 미를 풍기는 마임을 만들면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도 용이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마임은 말의 홍수 속에 잃어버린 관계, 진실, 인간성 등을 순수한 행동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보고 있으면 어린아이 같아지는 면이 있죠.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드릴게요.”(이정훈)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