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美 이민 1세대 최초로 오리건주 상·하원 5선 꿈 이룬 임용근 전 의원

입력 2014-10-13 02:02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한국컴패션 본부에서 만난 임용근 전 미국 오리건주 주의회 상원의원. 그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허란 인턴기자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신앙 안에서 ‘적소성대(積小成大·작거나 적은 것도 쌓이면 크게 되거나 많아짐)’의 자세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늘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민 1세대 최초로 1992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뒤 상·하원에서 5선 의원을 지낸 임용근(79·미국명 존 림) 전 미국 오리건 주의회 상원의원의 말이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한국컴패션 본부에서 만난 임 전 의원은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적소성대’를 한문으로 쓴 뒤 이렇게 답했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 윌슨빌시에 설립할 한국전쟁기념박물관 설립기금 모금 및 홍보를 위해 방한했다가 한국컴패션을 찾았다. 오늘날 자신이 있게 해준 은인 고(故) 로버트 모건 전 한국컴패션 대표와의 추억이 어린 곳이기 때문이다.

임 전 의원은 경기도 여주의 개척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던 1966년 한국컴패션이 개최한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모건 전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컴패션은 미국 교회에서 모은 성금으로 고아원뿐 아니라 전쟁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지역교회 목회자들도 후원했는데 그 역시 수혜자였다. 사경회가 끝나자마자 모건 전 대표를 찾아가 “매월 15달러를 후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5분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임 전 의원의 영어실력이 인상 깊었던 모건 전 대표는 한 달 뒤 그를 다시 찾았다. 컴패션 후원아동으로 구성된 중창단의 미국여행 인솔과 통역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여행은 임 전 의원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4주간의 미국여행 중 웨스턴복음주의신학교(WES)에 원서를 내 미국 유학을 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 유학을 결심한 건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임 전 의원의 아버지는 경기도 여주에서 소방대장으로 일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공산군 점령하에서 부역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총살당했다. 임 전 의원이 중학생일 때였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폐결핵을 앓은 그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가난 탓에 학비를 내지 못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는데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경기도 포천의 한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잡일을 하며 돈을 벌고 7500여개의 단어가 실린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며 꿈을 키웠다. 고학으로 서울신학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고향인 여주에 능서교회를 개척했다. 동시에 인근 미군부대에서 시간제 군목으로 일하며 영어실력을 키웠다. 모건 전 대표와의 만남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간 임 전 의원은 청소부, 페인트공, 정원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신학공부를 했다. 70년 WES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미국에는 성결교회 교단이 없어 목사 안수를 포기하고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편의점에서 시작해 식품점, 부동산업체, 건강식품회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이렇게 번 돈을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해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이는 자연스레 정계입문으로 이어졌다.

80년 오리건주 한인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이 된 임 전 의원은 오리건주 한인회장, 미 아세안 시민권자협회 의장을 거쳐 92년 오리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오리건주 상·하원에서 5선 의원을 지냈다. 낙선하긴 했지만 2010년 한인 최초로 주지사 후보에도 도전했다.

고난과 실패에 굴하지 않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임 전 의원은 사회 양극화와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갖고 기회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자 길이 열렸다"며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모두에게 각자의 몫을 주셨음을 믿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또 "돈 많이 벌어 비싼 차를 타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게 성공이 아니다"며 "정정당당히 벌어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5년 내 오리건주의 한국전쟁기념공원에 맥아더 장군, 이승만·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고 전쟁박물관을 열어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는 데 힘쓸 계획이다. '차세대 리더십 콘퍼런스'도 정기적으로 개최해 한인들이 미국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그는 "80세에 사명을 받은 모세처럼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