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신앙 안에서 ‘적소성대(積小成大·작거나 적은 것도 쌓이면 크게 되거나 많아짐)’의 자세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늘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민 1세대 최초로 1992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뒤 상·하원에서 5선 의원을 지낸 임용근(79·미국명 존 림) 전 미국 오리건 주의회 상원의원의 말이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한국컴패션 본부에서 만난 임 전 의원은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적소성대’를 한문으로 쓴 뒤 이렇게 답했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 윌슨빌시에 설립할 한국전쟁기념박물관 설립기금 모금 및 홍보를 위해 방한했다가 한국컴패션을 찾았다. 오늘날 자신이 있게 해준 은인 고(故) 로버트 모건 전 한국컴패션 대표와의 추억이 어린 곳이기 때문이다.
임 전 의원은 경기도 여주의 개척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던 1966년 한국컴패션이 개최한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모건 전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컴패션은 미국 교회에서 모은 성금으로 고아원뿐 아니라 전쟁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지역교회 목회자들도 후원했는데 그 역시 수혜자였다. 사경회가 끝나자마자 모건 전 대표를 찾아가 “매월 15달러를 후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5분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임 전 의원의 영어실력이 인상 깊었던 모건 전 대표는 한 달 뒤 그를 다시 찾았다. 컴패션 후원아동으로 구성된 중창단의 미국여행 인솔과 통역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여행은 임 전 의원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4주간의 미국여행 중 웨스턴복음주의신학교(WES)에 원서를 내 미국 유학을 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 유학을 결심한 건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임 전 의원의 아버지는 경기도 여주에서 소방대장으로 일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공산군 점령하에서 부역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총살당했다. 임 전 의원이 중학생일 때였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폐결핵을 앓은 그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가난 탓에 학비를 내지 못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는데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경기도 포천의 한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잡일을 하며 돈을 벌고 7500여개의 단어가 실린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며 꿈을 키웠다. 고학으로 서울신학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고향인 여주에 능서교회를 개척했다. 동시에 인근 미군부대에서 시간제 군목으로 일하며 영어실력을 키웠다. 모건 전 대표와의 만남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간 임 전 의원은 청소부, 페인트공, 정원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신학공부를 했다. 70년 WES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미국에는 성결교회 교단이 없어 목사 안수를 포기하고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편의점에서 시작해 식품점, 부동산업체, 건강식품회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이렇게 번 돈을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해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이는 자연스레 정계입문으로 이어졌다.
80년 오리건주 한인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이 된 임 전 의원은 오리건주 한인회장, 미 아세안 시민권자협회 의장을 거쳐 92년 오리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오리건주 상·하원에서 5선 의원을 지냈다. 낙선하긴 했지만 2010년 한인 최초로 주지사 후보에도 도전했다.
고난과 실패에 굴하지 않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임 전 의원은 사회 양극화와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갖고 기회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자 길이 열렸다"며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모두에게 각자의 몫을 주셨음을 믿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또 "돈 많이 벌어 비싼 차를 타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게 성공이 아니다"며 "정정당당히 벌어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5년 내 오리건주의 한국전쟁기념공원에 맥아더 장군, 이승만·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고 전쟁박물관을 열어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는 데 힘쓸 계획이다. '차세대 리더십 콘퍼런스'도 정기적으로 개최해 한인들이 미국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그는 "80세에 사명을 받은 모세처럼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미션&피플] 美 이민 1세대 최초로 오리건주 상·하원 5선 꿈 이룬 임용근 전 의원
입력 2014-10-13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