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1년 걸렸다. 1984년 우리나라에 휴대전화가 첫선을 보였을 때 모토로라는 절대 강자였다. 높은 장벽에 막혀 국내 업체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삼성전자는 불량 휴대전화를 모두 불태워버리는 ‘애니콜 화형식’이라는 극단 처방까지 감행했다. 이러지 않고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화형식 이듬해인 1995년 8월 삼성전자는 마침내 시장점유율 51.5%로 모토로라(42.1%)를 제쳤다. 이어 해외로 눈을 돌렸고, 세계 1위 노키아를 넘어서는 데 10년이 필요했다.
3년이면 충분했다. 2010년 4월의 어느 날, 실업자 레이쥔은 비슷한 처지의 엔지니어 6명과 좁쌀죽을 먹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샤오미(小米·좁쌀)’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다. 2011년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내놓았을 때 시장은 ‘짝퉁 애플’이라고 비아냥댔다. 샤오미는 2014년 6월 삼성전자를 누르고 중국 시장 1위(점유율 13.8%)가 됐다.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을 제패하는 데 고작 3년이 걸렸다. 샤오미는 이제 거꾸로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11년과 3년, 이 차이는 한국과 중국의 현주소다. 우리 기업은 고생고생하며 현재 위치까지 왔다. 한 전자업체 연구원 출신의 전직 임원 말을 빌리면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소니 같은 일본 전자업체 공장 견학을 가는 날이면 조를 짰다. 직원들이 어디에 서서 어떻게 일하는지, 부품은 어떻게 공급되는지, 쓰레기통까지 어디에 있는지를 조사해서 깡그리 베꼈다”고 했다. 당시 우리 기업은 일본이 알려주는 기술이 빈껍데기더라도 배우고 또 배웠다.
일본 경제평론가인 고무로 나오키는 1980년대 말 펴낸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우리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비꼬았다. 핵심부품·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해 완제품을 만든 뒤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산업 구조 때문에 이득은 결국 일본에 돌아간다는 조롱이었다. 중국과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가마우지를 이용해 낚시를 한다. 어부들은 가마우지의 목 아래를 끈으로 묶는다. 사냥감을 발견한 가마우지가 잠수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도 끈을 당기면 먹이를 삼키지 못한다.
그래도 한국이라는 가마우지는 일본을 제치고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정보기술(IT), 석유화학 등에서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등 뒤에서 맹렬하게 다가오는 추격자를 보지 못한 채.
우리 산업계는 중국이 쫓아오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추격 속도가 예상외로 빠르다. 어느새 턱밑까지 다가와 목줄을 죄고 있다. 세계 10대 철강기업에 중국기업은 3위(허베이스틸), 4위(바오스틸), 5위(우한스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포스코는 6위다. 올 들어 8월까지 우리가 중국에서 수입한 철강재는 전년 대비 31.1% 늘었다. 저가 물량 공세와 기술력 향상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거둔 올 3분기 영업이익 쇼크도 밑바닥에는 ‘중국의 역습’이 깔려 있다.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마트폰이 중국의 중저가 제품에 밀리고 있다.
13억 인구를 등에 업고 규모와 효율성을 모두 갖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양질전환이다. 중국 산업이 양적인 축적을 거쳐 질적 전환을 이뤄낸 것이다.
재계에서는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시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중국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라고 본다. 반전의 카드로 중국을 가마우지로 삼는 ‘가마우지 전략’을 얘기한다.
그런데 가마우지 목을 묶을 끈이 있는가. 기업들은 경기 부진, 각종 규제를 핑계 대며 지갑을 닫고 있다. 정부는 녹색성장이니 창조경제니 구호만 외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하고, 멈칫한다면 우린 지금보다 더 참혹한 ‘차이나 쇼크’를 맛볼지 모른다.
김찬희 산업부 차장 chkim@kmib.co.kr
[뉴스룸에서-김찬희] 가마우지 낚시
입력 2014-10-13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