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평화헌법, 노벨상은 못 받았으나

입력 2014-10-13 02:13

노벨상의 계절이다. 총 여섯 부문의 노벨상 가운데 평화상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다이너마이트 등을 발명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노벨은 지구촌사회에 큰 공헌을 한 이들을 위해 재산을 내놓았는데 오늘날 인류에게 평화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에서다.

평화상은 그간 정치적으로 결정돼 왔다는 비판도 있지만 늘 국제사회의 주목을 끈다. 올 평화상은 유난히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일본국헌법 9조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덕분이다. 직전 수상자는 유럽연합(EU),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등으로 이번에도 개인이 아닐 수 있겠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올 평화상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인권운동가에게 주어졌다. 어린이·청소년 억압에 반대하고 아동 교육권을 위해 몸 바쳐 노력한 두 사람의 활동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9조가 밀려난 데 대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국헌법은 ‘전쟁포기·비무장’을 선포한 9조가 있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데 이는 전 세계 어느 나라 헌법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조항이다. 2차대전 패전 후 미국의 주도 하에 구 일본제국헌법이 폐지되고 전쟁 없는 세상을 이상으로 삼아 마련한 조항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헌법 9조를 인류가 중시해야 할 유산이라고 봤다. 일본의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공저 ‘헌법 9조를 세계유산으로’(2006년)에서 적잖은 자극을 받은 덕분이었다. 또 장 융커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일본국헌법’(2005)에서 ‘패배를 껴안고’(2009)를 쓴 역사학자 존 다우어 교수가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관련해 “사실 가장 확실한 사과는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9조 정신”이라고 한 데 대해 크게 공감했다.

실제로 9조는 전후 일본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보수 정치가들은 이 조항을 제거 또는 개정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지만 단 한 획도 바꾸지 못했다. 일본 국민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현 아베 총리조차도 헌법 개정을 정권의 목표로 내세웠지만 국민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차선책으로 헌법 해석을 바꾸는 이른바 해석개헌을 주장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만 해도 위헌적 행태라고 보고 반발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지금 9조가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많은 일본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게다가 2012년 노벨평화상을 EU가 받으면서 평화헌법 9조도 그에 상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주변에 그러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은 농으로 받아들였다.

이십수년 전 일본사회에 호메고로시(譽め殺し)란 말이 유행했는데 ‘칭찬해 놓고 상대를 제압한다’ ‘무대 위에 올려놓고 흔든다’ 등의 뜻이다. 하지만 ‘9조를 노벨평화상으로’라는 생각은 호메고로시의 발상과는 거리가 멀다. 전후 일본 시민사회가 금과옥조로 지켜온 9조의 중요성을 곱씹으면서 역내 국가들이 함께 그 의미를 공유해 보자는 의도였을 뿐이다.

급기야 일본의 시민들이 움직였다. 지난해 초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이란 모임을 결성한 것이다. 다만 헌법 조항과 같은 추상적인 것은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노벨위원회의 입장을 감안해 그들은 9조를 지켜온 일본 국민을 후보로 추천했다. 결국 수상엔 실패했으나 9조의 중요성을 내외에 알리는 데는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미흡한 과거사 반성 등이 늘 불만인 우리로선 평화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데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평화헌법 시행 이후 67년 동안 헌법 9조는 지켜져 왔다는 사실이다.

최근 9조를 훼손하려는 일본 정치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 또한 사실이나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 9조의 가치에 공감하고, 이를 지켜온 일본 시민사회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과거사 극복은 평화의 가치를 공유할 때 자연스럽게 이뤄질 터다. 양국의 교류는 바로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