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 부른 카톡 압수수색] 지나치게 성급했던 檢… ‘엿보는 정부’ 오해 키워

입력 2014-10-11 02:56
세월호 침몰 나흘 뒤인 지난 4월 20일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승선자들의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 계획을 밝혔다. 승무원뿐 아니라 피해자인 승객들의 대화 기록도 조사하겠다고 했다. 국민적 관심이 세월호 사고에 집중됐을 때였다. 일각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제기됐지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에 묻혔다. 합수부는 이틀간 압수수색을 집행했고 확보된 압수물은 이후 승무원 재판에 중요 증거로 활용됐다.

세월호 추모집회를 주도했던 노동당 정진우(45) 부대표는 지난 1일 “카카오톡 압수수색으로 광범위한 사찰을 당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6월 18일 이뤄진 압수수색을 뒤늦게 알았으며 자신과 대화를 나눈 지인 3000여명까지 사찰을 당했다는 거였다. 정 부대표는 압수당한 대화 기록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와 무관한 개인정보, 사적 대화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카오톡 사찰을 당할 수 있겠다’는 공포감이 번져나갔고 ‘사이버 검열’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됐다.

◇반년 사이 무슨 일이?=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6개월 만에 180도 달라졌다. 수사 당국이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압수했고 사건의 진상 또는 혐의와 무관한 부분도 함께 들여다볼 위험이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유사하다.

세월호 참사가 수습 국면에 들어서자 정치권은 특별법 제정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고 여론도 양쪽으로 갈라졌다. 수개월간 대립이 이어지던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 사회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며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주자는 야당과 유족의 요구에 반대 입장을 밝힌 뒤 나온 발언이었다.

이틀 뒤 대검찰청은 정부 유관 부처와 회의를 가진 뒤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담수사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곧바로 서영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 등 검사 5명과 전문 수사관으로 구성된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수사팀’이 꾸려졌다. 그러자 ‘카카오톡을 포함한 사이버 공간이 실시간 검열된다’는 식의 얘기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사상 초유의 ‘사이버 망명’ 발길이 줄줄이 이어졌다.

◇세련되지 못했던 검찰=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회사원 김모(30)씨는 ‘해경이 시신 수습을 고의로 막고 있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대화를 꾸며냈다. 본인 명의 휴대전화 2대를 이용해 마치 구조 현장에 투입된 친구와 카카오톡 대화를 나눈 것처럼 1인2역을 했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 자택에서 “사체가 가득히 보이는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등의 대화를 휴대전화 2대로 주고받은 후 SNS에 올렸다. 수사에 착수한 서울지방경찰청은 김씨의 카카오톡 대화를 압수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압수된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을 증거로 김씨를 기소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송각엽 판사는 지난 6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김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처럼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통한 명예훼손 처벌은 최근 ‘사이버 검열’ 논란 이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결국 대통령 발언 직후 부랴부랴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후속 대책을 내놓은 데다 여론을 감안해 충분한 소통도 하지 못한 검찰이 스스로 이번 논란의 기폭제가 됐다.

◇검찰이 밝힌 카카오톡 실시간 모니터링 진실은?=검찰은 당혹해하면서도 억울하다고 한다. 우선 사이버 실시간 모니터링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오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이버 대화 기록을 압수해 보려면 영장부터 청구해야 하고 발부받은 뒤에야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대화가 오간 뒤 기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점상 실시간이 될 수 없고, 사후 증거수집 차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감청영장 청구의 경우에도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혐의 등 공안사범에 국한되는 제한적인 조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검찰은 ‘선제적 대응’ 방침이 자의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줘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비판적 대화 내용까지 광범위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10일 “세월호 사고 당시의 희생자와 유족을 겨냥한 악성 댓글처럼 특별한 사안에 대해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고, 피해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해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정책적 비판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부분을 다루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과거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서들이 사이버 사안을 나눠서 담당했지만 하나의 전담수사팀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한다. 전담수사팀이 기본적으로는 고소·고발 사건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검찰은 카카오톡 압수수색이 기존에 이뤄지던 다른 압수수색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수사에 활용되는 계좌 및 이메일 압수수색의 경우에도 당사자가 압수 여부를 즉각 파악할 수 없다. 스마트폰의 경우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개인정보가 함께 압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계좌·이메일·스마트폰 등은 모두 혐의와 상관없는 내용도 수사 당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압수물에 포함될 수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카카오톡 압수수색만 문제 삼느냐는 것이 검찰의 항변이다.

◇활동에 들어간 검찰 전담수사팀=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서울중앙지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수사팀은 10일 현재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의뢰가 들어왔거나 고소·고발된 사건 중 온라인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가해자가 특정이 안됐거나 추적이 어려운 사건을 수사 중”이라며 “선제적 수사로 배당된 건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향후 결과에서 드러날 이들 사건의 수사 과정과 이른바 첫 ‘선제적 수사’가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가 사이버 검열 논란의 중요한 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성열 문동성 나성원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