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육상 함께해요”=김수민(27·경북장애인체육회)은 외롭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자 휠체어 육상선수는 저뿐이에요. 하반신 마비 여성들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요. 휠체어 육상에 관심이 있지만 주저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면 ‘일단 나와서 도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김수민은 2005년 3월 아파트 4층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척수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그녀는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다시 걸을 수 있어요?”
의사는 다시는 걸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후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이올린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
“꿈이 사라진 뒤 절망에 빠졌어요. 그러던 중 재활센터에서 당시 장애인 육상 국가대표였던 박정호 선수(현 장애인 육상 대표팀 감독)를 만났어요. 왜 장애인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냐고 당돌하게 물어 본 게 계기가 돼 휠체어 육상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바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휴대전화 영업을 하며 훈련하던 김수민은 지난 4월 소속팀을 구하고 한국공항공사 부산지역본부로부터 후원도 받아 이제 생계 걱정 없이 훈련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200m, 400m, 800m, 1500m에 출전하는 그녀는 목표를 소박하게 잡았다.
“제가 활동하는 장애등급(T-54)엔 쟁쟁한 선수들이 워낙 많아요. 일단 동메달 1개 획득이 목표입니다. 덩치도 작은 제가 혹시 금메달을 따면 다들 깜짝 놀라겠죠. 호호호.”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내가 챔피언”=‘챔피언이란 누군가를 이기고 최고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 임우근(27·대한장애인수영연맹)의 좌우명이다. 지체장애 2급인 임우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리 수술을 받고 재활을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재능에 노력을 보탠 임우근은 기량이 일취월장해 2010 광저우장애인아시아게임과 2012 런던장애인올림픽 평영 1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임우근은 무료 수영강습회를 열어 장애인들에게 수영을 보급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복지관에서 토요일마다 무료 수영강습을 받은 덕분에 태극마크를 달고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임우근은 한때 시련에 빠졌지만 슬기롭게 극복했다.
“런던올림픽을 마친 뒤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보잘것없는 수영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더군요. 그때 수영장에 온 지적장애인 한 분이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즐거워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초심으로 돌아갔죠.”
지난해 11월 임우근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초등학생 비장애인 수영 선수들의 일일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죠. 꿈나무 선수들에게 힘들지만 즐겁게 수영할 수 있도록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임우근은 아시안게임 2연패를 위해 강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기절할 정도로 한번 해 보자는 생각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변한다’는 생각으로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니 꿈이 이뤄졌어요”=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4 보치아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환상의 콤비 김한수(22·경기도장에인보치아연맹)와 정호원(28·속초시장애인체육회)은 2인조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대회 개인전에서 김한수는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김한수는 태어날 때 난산으로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못해 6세 때까지 않아 있을 수도 없었다. 특수학교인 주몽학교에서 보치아를 접한 그는 끈질긴 노력과 성실함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고,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거머쥐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보치아는 뇌병변장애인이 참가하는 경기로 그 중 BC3는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이 보조자가 함께 경기를 한다. 뇌병변장애 1급인 김한수는 언어장애로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선수의 의사에 따라 공을 굴리는 경사와 홈통을 조절해 줘야 하는 코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그와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어머니 윤추자(54)씨가 코치의 길을 선택했다. 윤 코치는 아들의 무릎 위에 숫자판을 놓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경기를 풀어 나간다. 아들이 경기 중 손으로 숫자를 짚으면 윤 코치가 그에 맞게 공을 굴리는 경사와 홈통을 조절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랑스러운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들의 장애가 심해 처음 보치아를 시작했을 때 엘리트 선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니 꿈이 이뤄지더군요. 아들이랑 같이 꿈을 하나씩 이뤄 나가니 정말 기뻐요.”
이천=글·사진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몸은 불편해도 삶 자체가 도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태극전사들
입력 2014-10-13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