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 러시] “사이버 사찰 불안” 토종 SNS 엑소더스

입력 2014-10-11 02:30
아이폰 5S에서 독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이 구동되는 모습. 사이버 검열 논란 여파로 한국에서 텔레그램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지난 한 주 동안 한국인 신규 사용자가 150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국론 분열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인터넷 세상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때문에 잘나가던 국내 IT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는 ‘나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한 카카오톡과 반사이익을 얻은 독일산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 이야기다.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하자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을 꾸려 포털과 메신저를 상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힌 게 화근이었다. 여기에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지인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이버 망명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에 반감을 드러낸 정치적 움직임이 카카오톡이라는 대중적인 도구와 결합하면서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로 번진 것이다. 동시에 텔레그램은 ‘사이버 망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사실 정부가 갑자기 검열을 강화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검찰의 압수수색 방식과 수집하는 내용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지난 4월 세월호 선원들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했을 때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검찰에 넘어간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과는 정반대 분위기다.

이 때문에 카카오톡은 처음에 검열 논란이 불거졌을 때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불안감을 덜어내는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억울하다는 해명이 먼저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IT업계에서는 최근 텔레그램이 카카오톡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텔레그램의 인기는 메신저의 성능이나 편의성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검열 논란에 편승한 측면이 크다. 반짝 돌풍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텔레그램은 메신저 자체의 인기라기보다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한 측면이 커 외부 요인이 진정되면 관심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열 정국이 계속되면 다음카카오가 예상외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국정감사 기간 중 카카오톡이 계속 검열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원회는 16일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를 참고인으로 출석토록 했다.

정치적 이슈 때문에 다음카카오가 곤경에 처하자 중국의 자국산업 보호 정책과 대비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자국 IT 기업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구글은 각종 검열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은 아예 중국에서 서비스조차 못한다. 카카오톡, 라인 등 국내 메신저는 중국에서 서비스가 차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망 기업이 정부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검열 논란에 불을 지핀 쪽은 정부인데 국민의 분노는 엉뚱한 곳에 쏠리며 다음카카오가 유탄을 맞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