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설렁탕 체인점 ‘신선설농탕’. 책 읽는 직장은 많지만 이 회사의 독서경영은 좀 특이하다. 주방장부터 홀 서빙 직원까지 모두 오청(48) 사장이 정해준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적는다. 직급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석 달에 한 번 등 횟수는 다르다. 읽고 쓰기는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독후감을 안 쓰면 승진도 못한다. 대신 잘 쓰면 상을 받는다.
다른 회사들은 도서관을 만들어 책 읽기를 권장하거나 독서토론을 하거나 도서구입비를 준다. 그런데 여기는 사장이 직접 책을 골라 200여명에게 매달 한 권씩 선물처럼 준다. 책 첫 장에는 프린트된 종이가 붙어 있다. 사장이 쓴 독후감이다. ‘○○님께’로 시작하는 글에는 책을 고른 이유와 느낀 점뿐 아니라 회사 소식도 들어 있다. 작은 사보(私報)인 셈이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신선설농탕에서 오 사장과 독후감 우수사원 7명을 함께 만났다. 모회사인 ㈜쿠드 대표이기도 한 오 사장은 “좋은 책을 나만 읽기는 아쉬우니 같이 읽자. 그리고 나 먼저 직원에게 편지 쓰듯 독후감을 쓰자고 생각했다. 일종의 러브레터인 셈”이라며 웃었다. 돌아오는 직원들의 독후감은 그냥 책을 읽은 소감이 아니었다. 책을 읽고 자신은 물론 가족이 어떻게 변했는지, 내밀한 이야기도 적혀 있다. 오 사장은 “독후감을 통해 직원들의 대소사를 다 알게 됐다. 자주 안 만나도 독후감을 통해 직원 이름은 물론 내면까지 알고 소통한다”고 말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은 늘어난다. 기본 12권 이외 중간관리자는 연간 12권, 점장은 20권, 본사 관리직은 24권을 ‘추가로’ 읽어야 한다. 책 종류는 다양하다. ‘하루 5분 인생수업’(나무발전소) 같은 자기계발서, 흑백사진집 ‘윤미네집’(포토넷),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한권으로 보는 그림 한국사 백과’(진선아이), 다소 어려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도 있다.
신선설농탕은 직원 80%가 주부사원이다. 집에 가면 살림을 하고 아이들도 돌봐야 한다. 주부가 책을 읽으면 남편과 아이들도 변화되겠지만, 사실 책을 사볼 여유도 없을 터. 하루 종일 주방에서 설렁탕 끓이고, 서빙하기도 바쁜데 ‘의무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면 부담은 없을까.
11년째 독산점 조리담당을 하고 있는 박명희씨는 “처음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 전에는 1년에 한두 권 읽기도 힘들었는데 강제성이 있으니 책을 읽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변화된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수업’(한겨레출판사)이라는 책에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구절이 있다. 중년에 접어들며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전했다.
신인희 인사동 시화담점장은 ‘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작은씨앗)이라는 책을 읽고 꿈을 가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지금은 웃음치료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의 얼굴은 편해보였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직원도 있다. 심대근 본사 교육담당 점장은 컴플레인 담당이다. 화가 난 고객의 불만전화는 그에게 걸려온다. 계속 전화를 받다 보면 머리에서 불이 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참을성이 부족해진다. 하지만 고객을 바꿀 수 없으니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몇 달 전 읽은 ‘몰입’(RHK)이라는 책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가족도 좋아한다. ‘한국인의 밥상’(시드페이퍼)를 읽은 후엔 아이들과 함께 책에 나온 여행지로 답사도 갔다.
인사동 시화담 조리담당 김창기씨는 입사 1년차. 그는 면접 때 한 달에 책 몇 권을 읽느냐는 질문에 말을 못했다. 한 권도 제대로 못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 들어와서 50권은 읽었다”며 “책을 읽으라고 하니 존중받는 느낌”이라고 으쓱해했다.
신선설농탕의 독서경영은 2008년 1월 시작됐다. 사장이 매달 30권쯤 구입해 그중 10여권 정독하고 한 권을 고른다. ㈜쿠드는 신선설농탕·우소보소(구이전문)·수련(한정식)·시화담(호텔입점 한정식)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연 매출 1000억원의 외식업체. 대표 브랜드는 신선설농탕으로 가맹점 9곳, 직영점 34곳 등 총 43개 점포로 구성된 체인이다. 그동안 독서경영을 위해 80여권을 골라 총 2만2000여권을 샀다. 도서구입비만 3억원 이상이다.
여기에는 오 사장의 부친인 창업주 오억근(78) 회장의 영향이 컸다. 오 사장은 “아버지는 무학(無學)이었다. 창업 후 기반을 다져놓은 뒤 책을 읽으려 은퇴하셨고 지금도 다락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신다”며 “식당 일을 보고 자라긴 했지만 경영수업도 못 받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해법은 책에 있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국민일보-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주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신선설농탕] 사장님 러브레터 꽂힌 책, 매달 한 권씩 선물 받아요
입력 2014-10-13 03:54 수정 2014-10-13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