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서윤경] 바르셀로나에서 도둑을 만나다

입력 2014-10-11 02:20 수정 2014-10-11 14:51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안. 여행자는 전 세계에서 소매치기와 도둑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 중 하나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에서 안전을 지키기 위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길에서 지도를 본다는 건 ‘내 가방을 뒤지라’는 뜻과 같다는 인터넷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여행 책자를 보고 있는 여행자에게 한 남성이 다가왔다. 허름한 행색의 남성이 손목을 가리키며 시간을 알려 달라고 했다. 여행자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여주며 시간을 알려줬다. 남성은 떠났다. 그리고 여행자의 여행책 읽기는 계속됐다. 한 시간이 지나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아차’ 싶었다. 옆 의자에 올려뒀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여행자는 생각에 잠겼다. 결론이 나왔다. 2인 1조의 도둑‘놈’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있는 반대 쪽 방향으로 남성이 다가와 시간을 묻기에 시선을 돌리는 사이 또 다른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여행자는 황당한 상황에 맞닥뜨려야 했다. 심한 우울감에 빠진 것이다. 눈 뜨고 코 베어가도 모를 만큼 어이없는 일을 당한 데 따른 자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이동할 때면 습관처럼 들었던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면 늘 하던 인터넷 검색이나 게임도 할 수 없었다. 이게 여행자를 우울하게 만든 이유였다. 우울함은 다음 날 기차를 타고 2시간 동안 이동할 때 바닥까지 내려갔다. 바보가 된 듯했다.

“한 전화 제조사는 ‘소소한 권태감’조차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본다. 이런 새로운 경향은 노트북 앞에 본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붙어 앉은 채로 지루해하지도, 그렇다고 재미있어 하지도 않는 학생들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중)

맞다. 여행자, 즉 ‘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PC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소소한 권태감을 해결하는 방법을 잊게 됐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프리카의 권태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이 시간 아프리카는 모든 게 정지한다. 가만히 있어도 진을 빼놓는 더위 때문이다. 지루함은 외부 세계에 대한 반응을 멈추고 내부 세계를 탐색하는 상태다. 지루함은 혼자 힘으로,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다행히 그 자극제는 나에게도 적용됐다.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내부 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행에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 대신 현지 주민들에게 들었다. 기차 안에서 만난 그리스 여행객에게 도둑‘놈’의 전횡을 고발했더니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까지 몰려와 나와 비슷한 경험을 쏟아냈다. 카페에서 만난 스페인 아가씨는 경찰서까지 안내해주고 분실물 리포트 작성에 도움을 줬다. 짬짬이 노트를 꺼내 손으로 글을 쓰며 감정과 소회를 정리하기도 했다. 기차 안에서 내부 세계를 탐색하며 적은 글이 있다.

도둑‘놈’들 덕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나온 ‘길들여진다’는 것이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어린왕자’에서는 ‘길들여진다’는 것을 이렇게 정의했다. “길들여진다는 게 어떤 것이냐”고 묻는 어린왕자에게 사막여우는 “사이가 좋아진다”는 것이라 말했다. 그때 나는 ‘길들여진다’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중독’이었다. 스마트폰에, 노트북에 길들여진 내 모습이 그것들과 사이가 좋아졌기 때문이라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3년 전 얘기다. 그리고 올해 나는 ‘어린왕자’를 책장에서 다시 꺼냈다. 10년마다 의식처럼 행하는 나만의 행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어린왕자’는 10대, 20대, 30대… 나이가 드는 것과 함께 그때마다 다르게 읽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이의 끝자리가 ‘0’이 될 때마다 ‘어린왕자’를 읽었다.

마흔이 된 올해 나는 ‘어린왕자’에서 ‘길들여진다’는 내용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의미를 하나 더 부여했다. ‘길들여진다’는 것에 ‘무뎌진다’는 것을 보탰다. 무뎌진다는 뜻을 더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올해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건, 사고들 때문이다. 그 사건, 사고들을 감정 없이 덤덤히 받아들이는 스스로를 보며 이런 상황에 ‘길들여진 탓’이라는 나름의 답을 내렸다. ‘어린왕자’의 순수한 시선에 어른의 몹쓸 시선이 더해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렇게 ‘어린왕자’의 책을 덮었다. 아마도 내 나이의 뒷자리가 다시 ‘0’이 될 때나 꺼낼 책이었다. 질문을 던진다. 그때는 ‘길들여지다’의 의미에 무슨 뜻을 더할까. 부디 길들여짐의 대상이 ‘스마트폰, 노트북’이나 ‘사건·사고’만은 아니길….

서윤경 문화부 차장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