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안전을 최고의 과제로 삼고 있다. 제2, 제3의 참사를 막기 위한 범국가적 안전 점검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안전 대한민국’은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이번엔 고속도로 터널 붕괴를 막는 공사를 엉터리로 한 간 큰 부실 시공업체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검찰은 고속도로 터널 공사에서 록볼트(Rock Bolt·암반 지지용 철근)를 설계보다 적게 쓰고도 제대로 시공한 것처럼 속여 공사비를 타낸 22개 시공사와 49개 하도급사 직원 16명을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2010년 이후 한국도로공사 발주로 착공된 전국 고속도로 터널 121개 중 무려 64.5%인 78개가 부실하게 시공됐다.
적발된 사례를 보면 충격적이다. 설계에는 록볼트를 1만8350개 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32.3%인 5930개만 사용한 곳도 있다. 1만2420개의 록볼트를 빼먹고도 설계대로 모두 시공했다며 도로공사에 뻔뻔하게 공사대금을 청구했다. 이런 식으로 과다 지급된 공사비만 모두 187억원에 이른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지난 7월 부실시공을 감추기 위해 관련 서류까지 위조했다. 터널이 무너지거나 말거나 이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돈만 챙기면 된다는 식이었다.
고속도로 터널의 시공 비리가 이처럼 만연한 것은 현장을 관리·감독·감리해야 할 도로공사와 감리 용역업체의 무책임도 한몫했다. 이들은 록볼트 등의 자재 반입 수량과 품질을 검수해야 하지만 아예 검수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단지 거래명세표와 같은 송장만을 확인하고 반입 물량을 파악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저질렀다. 도로공사는 뒤늦게 “문제가 발견되면 재시공 또는 보강공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조사는 2010년 이후 도로공사가 발주해 착공한 터널로 한정됐다. 이전에 공사를 발주한 터널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수사 결과를 통해 국내 수많은 터널의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게 된 이상 고속철도, 국도, 지방도 등의 터널에 대한 안전 점검도 다시 실시해야 한다.
[사설] 돈 빼돌리느라 터널 안전은 뒷전이었다니
입력 2014-10-11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