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울 한강변에는 풍광이 수려한 정자가 많았다. 은퇴한 고관대작이나 시인묵객들의 주 무대였지만 왕이 즐겨 찾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각종 사변과 경제개발 등으로 대부분 헐려 본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정자는 극소수다. 용산구 한남동 나루터에 있던 제천정은 왕실 소유로, 세조 이후 왕들이 가장 자주 찾았던 정자다. 중국 사신들의 단골 연회장으로도 이용됐으나 인조 시기 이괄의 난 때 불타고 말았다.
압구정은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뒤편에 있었다. 세조 때 권신 한명회의 별장이었으며 ‘부귀공명 다 버리고 강가에서 해오라기와 벗하여 지낸다’는 뜻을 지녔다. 최고의 한강 뱃놀이 명승지였으며, 겸재 정선이 그린 ‘압구정도’가 당시 모습을 전하고 있다. 훗날 박영효가 소유했으나 갑신정변으로 재산이 몰수될 때 이 정자도 헐렸다. 광진구 화양동에 있던 화양정은 내부가 100칸이 넘을 정도로 웅장했으며, 단종과 명성황후의 전설이 내려온다. 1911년 낙뢰로 무너졌다.
현재 정자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은 마포구 망원동의 망원정, 동작구 본동의 용왕봉저정, 광진구 자양동의 낙천정, 동작구 흑석동의 효사정 정도다. 이 가운데 망원정은 세종이 즐겨 찾은 곳이다. 세종은 가뭄이 극심할 때 농민들을 걱정하며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인 이곳에 들렀다가 때마침 큰비가 내리자 기쁜 마음에 ‘희우정(喜雨亭)’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그 뒤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정자를 크게 고쳐 망원정(望遠亭)으로 개명했다. 아름다운 경치를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 마포구가 강변북로에 딱 붙어있어 접근이 불편한 망원정에 새 연결로를 만들어 10일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가 사라진 정자들을 복원해 수도 서울의 정취를 북돋웠으면 좋겠다. 역사를 되찾는 의미도 있지 않겠는가.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망원정
입력 2014-10-11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