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느니라. 네가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뿐이라.”
케냐의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의 작품 ‘한 톨의 밀알’은 고린도전서의 이 구절을 머리말로 새기면서 시작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작품의 제목 또한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빌려왔을 뿐 아니라 해당 구절은 응구기의 대표작인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케냐의 독립을 위해 ‘한 톨의 밀알’이 된 키히카라는 청년을 둘러싸고 몇 겹으로 일어나는 배반들과, 작품에서 ‘유다’로 지칭되기도 하는 배반자들의 죄의식 문제를 역설적이게도 매우 서정적인 내적 독백으로 시종일관 이끌어가고 있다. 케냐의 작은 농촌마을 타바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는 아프리카의 장대한 자연풍광에 대한 묘사도, 대자연 속의 모험담도 담겨 있지 않다. 작품이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이 작품에 실리는 작가의 의도가 더 깊은 곳에 있음을 얘기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한 톨의 밀알’이 케냐의 독립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은 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덕적 갈등이기 때문이다.
배반당해 죽었기에 작품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청년 키히카가 있다면, 그와 독립군들을 도운 영웅으로 추앙되는 무고가 있다. 그를 영웅으로 추대하려는 주변의 격앙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무고의 은자적인 면모로 그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는 더 높아져만 간다. 그러한 평가와 반비례해서 작품은 매 단계 무고의 내면적 갈등을 대비적으로 그려낸다.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받은 고통의 기억들이 뒤섞이는 갈등의 심리 속에서조차 사실 그가 저지른 일은 검열되듯이 분명하게 발설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아름다운 케냐를 상징하듯 생명과 정열을 현현하는 한 여성 뭄비가 있다. 키히카의 여동생인 뭄비의 순수한 눈빛 아래서 무고는 자신이 바로 그녀의 오빠이자 독립의 진정한 영웅인 키히카를 죽인 배반자임을 고백하며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한 톨의 밀알’은 얼굴 없는 주인공 키히카가 남긴 성경에 밑줄 쳐져 있던 구절을 몇 번에 걸쳐 인용하면서 사건의 장을 나눈다. 일종의 작품의 이정표이기도 한 이 구절들을 통해서 독자는 이 작품이 신약의 배반의 서사를 확장시킨 것을 알아차릴 수 있기에 흥미롭다. 케냐의 독립은 인물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것처럼 항거와 투쟁과 수용소에서 보낸 고통스러운 시간의 열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무고의 배반의 고백과 그가 저지른 죄의 회개가 절대조건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물론 작품 안에는 뭄비를 사이에 두고 애정의 경합을 펼치는 기코뇨와 카란자의 드라마도 있다. 이들도 무고와는 다른 이유로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배반한 경력의 인물들이다. 이 주변 인물과 무고와의 차이점은 무고에게는 배반에 대한 실존적인 고뇌와 갈등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상징적인 ‘유다’인 무고는 바로 고백과 회개를 통해 거듭나며 케냐의 정치적인 해방에 못지않게, 그의 존재가 고백과 회개를 통해 배반의 과거로부터 해방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작품은 무고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마무리 부분에 요한계시록의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졌습니다”라는 구절을 안배한다.
한 나라의 진정한 독립과 해방은 물론 한 인물의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해결은 궁극적으로는 도덕적인 회복에서 완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한 톨의 밀알’은 무고라는 인물의 내적, 외적 여정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응구기가 말하고자 하는 케냐의 진정한 독립이자 해방인 것이다. 아프라카의 현실을 현상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여타의 아프리카 작품들과 응구기의 ‘한 톨의 밀알’이 구별되는 중요하고 귀중한 지점이자, 멀리 있는 분단된 이 땅의 독자들을 일깨우는 응구기의 전언인 것이다.
최윤(소설가·서강대 교수)
[최윤의 문학산책] 케냐의 ‘한 톨의 밀알’
입력 2014-10-11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