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하여 농사를 짓는 수필가(호: 가일)의 귀촌일기에 이런 글이 있었다. “무를 뽑아 싣고 서울에 오니… 그간 거둬들인 것들이 현관과 베란다, 세탁실 등 빈 공간마다 꽉 차 있다. 거둬들인 것을 연실 먹은 식구들이 몸무게가 늘었다. 얼굴도 통통해지고 배도 꽉 찼다. 아파트 상가 폐업세일 코너에서 바지를 고른다. 두 치수를 줄여 입는데도 바지가 헐렁하다. 처자식 몸무게는 느는데 아비는 여위어 가는구나. 자신의 몸을 새끼 먹이로 주는 담낭거미처럼, 신장을 쪼아 나오는 피로 굶어가는 새끼를 살린다는 펠리컨처럼 아비는 그간 살 떼어 식구들 먹인 것인가.”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우리교회 K집사의 지쳐 보이는 어깨가 자꾸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K집사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다. 직장에서 중책을 맡은 그는 요즘 감사로 책임감에 눌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에 오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만이 있고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아내대로 지쳐 그를 이해할 여유가 없다. 그는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족을 위해 뼈골 빠지게 일하지만 늘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식구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지쳐 간다. 직장에서의 피로는 더욱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가정에서의 그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다. 직장에서 피곤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남편과 아이들의 아버지인 그가 집으로 돌아오면 제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이들, 신통치 않은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는 아내, 이 시대의 아버지인 그는 외롭다. 그는 상황에 매몰되어 있다.
귀촌하여 농사를 짓는 아버지나 도시에서 서류에 묻혀 사는 아버지나 허리띠의 치수가 줄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사람은 없다. 내가 나의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10대 초반이었다. 매년 내 생일이면 금반지를 사 주시던 아버지가 그해 사업 실패로 반지를 사주지 못하셨던 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
[힐링노트-오인숙] 이 시대의 아버지들
입력 2014-10-11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