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르포] 할머니·이주여성·어린이 한글에 눈을 뜨게하다

입력 2014-10-11 02:22
충북 제천 도화교회 부설 도화문해학교 ‘4인방 할머니 학생’들. 칠순이 넘어 문해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줄 알게 되자 하나님을 영접했다. 이 할머니들은 벽 글씨 성경구절을 또박또박 읽었다.
충북 제천 백운산 자락 도화교회 예배당.
문순국 목사 부부가 지난 6일 교회 마당에서 아동센터 어린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도화문해학교 할머니 학생들과 이주여성 학생 및 교사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시골교회 예배당 담에 쓴 성경 구절과 예쁜 벽화가 눈길을 끌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고딕체의 검정 글씨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사이에 물과 하늘, 해와 달, 땅과 동식물이 그려져 있었다.

“천, 지, 를, 창, 조, 하, 시, 니, 라!”

그 담 위로 얼굴을 내민 ‘해님과 달님’이 큰 소리로 이렇게 ‘읽었다’. 달님은 할머니들이었고 해님은 이주여성들이었다. ‘읽는다’라는 행위는 피조물의 자의식 발현이다. 천부의 자유의지의 실현이다.

그 해님과 달님은 교회 부설 문해학교 학생들이다. 이제 해님과 달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조한 기념일 한글날도 안다. ‘글을 읽고 이해(文解)’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축복으로 복음도 알게 됐다. 한글 공관복음서를 읽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주임을 고백하게 됐다. 그들이 말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문해의 풍경’이 지난 6일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백운산 아래 산골 동네 도화교회(문순국 목사)에서 한 장의 사진으로 잡혔다. 초가을 빛이 나락을 살찌우고, 초목을 단풍 들게 한 날이었다.

도화교회 마당은 푸른 잔디였다. 그 잔디 마당 앞은 한적한 지방도로였고, 도로를 따라 산 정상으로 계곡이 이어졌다. 교회에서 시오리(6㎞)만 내려가면 면사무소가 있다. 면사무소에서 제천 시내 방향으로 오리 즈음에 그 험준하다는 천등산 박달재가 병풍을 이룬다. 도화교회가 그만큼 오지라는 얘기다.



"성경 읽을 줄 알아야 교회에 가지"



2004년 문을 연 도화문해학교는 도화교회 부설 기관이다. 1998년 설립된 도화교회는 미자립 교회였으나 2002년 문순국(52) 목사가 부임하면서 지금은 50여명의 재적교회가 됐다. 10배 늘어난 수치다.

도화문해학교 박만분(88) 황홍순(86) 박명월(78) 유영애(76) 할머니.

매주 화·금요일이면 할머니가 아니라 학생이다. 이들은 근년 들어 도화교회 집사가 됐다. 특히 유 집사는 무속인이었으나 한글을 깨치면서 새로 태어났다. 문해학교 반장이기도 하다.

할머니 집사님들은 문해학교 입학 후 졸업 없이 ‘마냥’ 학교에 다닌다. “졸업하면 재미없어. 그래서 안 해.”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졸업 거부’를 선언했다. 매년 평균 10∼20명 정도가 학교를 들락날락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재밌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4명은 쓰기와 읽기 잘 못한다고 누가 뭐라 한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는다. “나는 곧 하나님 나라 갈 사람”이라고 선생님에게 억지 부리면 그걸로 끝∼. 교사 최성범(76) 장로는 이 ‘악동 학생’들에게 늘 당하면서도 허허 웃으시며 가르친다. 교회 앞 계곡 건너편 화당초교에서 마지막 교편을 잡았던 30여년 경력의 베테랑 전직 교사로 이곳 백운면 출신이다. 문 목사로부터 문해학교 교사 청빙 받고 가르치면서 개종을 했고, 장로 봉직도 받았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문해학교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교회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새로 부임한 문 목사가 교회 주변 마을 화당리, 도곡리, 방학리 등을 다니며 “교회 나오세요. 할머니”하며 전도하곤 했는데 이 할머니들은 영화 ‘마파도’ 할머니들 캐릭터처럼 요리조리 잘도 둘러쳤다.

“목사 양반. 고생이 많아요. 가고 싶어도 성경책을 읽을 줄 알아야 가지.”

갈 마음 없었던 할머니들은 이렇게 눙쳤다. 문 목사는 처음에 할머니들이 정말 교회에 나오기 싫어서 인사치레 하느라 그러는 줄 알았다. 한데 의외로 문맹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들은 “남들 우세스러워 모르고도 아는 척하며 살았다”고 한글을 쓰고 읽게 된 후 고백했다. 많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런 세월을 살았다.

“내가 일정 때 태어났는데 계집애가 무슨 공부냐며 친정아버지가 학교를 안 보냈어. 시집이라고 와 보니 폭폭 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지. 돌멩이 시알려(세서) 셈을 해 장사를 했어. 그렇게 자식들 대학 보냈고….”

“열일곱 살 때였어요. 야학이 식전에 잠깐씩 열렸어. 여자들이라고 야학도 1시간 정도밖에 안 가르쳐 줘. 그마저도 어머니가 애(동생) 보라고 안 보내 주지 뭐야.”

“그때 배운 게 지금도 생각나. 첫날 ‘아이, 오리, 은하수’를 배웠어. 다음날 ‘감나무가 점점 자라오. 조심해 가거라’를 읽고 쓰게 했어. 이틀 배운 걸로 시험을 봤는데 냅다 붙었었지 뭐야. 그러니 어머니가 ‘됐다. 그 정도 배웠으면. 더 나갈 거 없다. 여자가 더 배우면 연애편지나 쓰지’ 이러셨어. 그 후로 평생 못 배웠지.”

학생들 얘기가 끝나자 최 장로가 말했다.

“내 여동생이 부산 해운대교육지원청장까지 하고 정년퇴직을 했어요. 한데 내 동생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 초등학교 입학 한 달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할아버지가 정정하셨다면 여동생 학교 보내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감나무가 점점 자라오….’

그 꽃다운 시절 처녀들은 어머니가 됐고 그들의 감나무는 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칠순이 넘어 비로소 문해학교에 입학, 칠판에 한 자 한 자 적으며 개명(開明)했다. 이제는 교회도, 우체국도, 농협도, 면사무소도, 파출소도 두렵지 않다.

“예수님이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왜들 그랬나 몰라. 우리 부모님들이 예수를 몰라서 그랬겠지? 가난했고….”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같이 한글 공부"



그렇게 문해학교 교실에서 한담이 오갈 때 교회 주차장에 차 세우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피부가 뽀얀 베트남 하노이 출신 여인 비트람(37).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보다 “감사합니다”를 먼저 하는 이주 여성이다. 2008년 이곳으로 시집 온 재혼 여성으로 중도입국한 중학교 3학년 자녀가 있다. 대만에서도 3년여를 지내 중국어를 잘한다. 늘 잘 웃는 비트람은 교회 위쪽 덕동계곡에 있는 서울 사랑의교회 제천기도동산에서 주방 일을 한다.

교회 문해학교 주방에서 차를 준비하던 필리핀 이주여성 아더리타(43)가 그런 비트람을 맞았다. 아더리타는 고향 루손 섬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1997년 한 이단종교 주선으로 국제결혼을 해 이곳에 정착했다. 교회가 운영하는 도화늘푸른지역아동센터 영어 교사이기도 하다. 고1·중2 1녀1남, 거기에 중3 조카도 데리고 키우는 한국의 보통 학부모. 키 145㎝의 이 당찬 필리핀 엄마는 ‘호랑이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으면서도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또 다른 이주여성 두예림(35)은 중국 한족 출신으로 인근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정도로 이웃과 교회에 열심이다. 이날 일이 밀려 참석하지 못했다. 이들은 문해학교 국제반인 셈이다. 국제반 담임은 문 목사이다.

이주여성 세 자매는 도화교회의 보배이기도 하다. 서로 이끌어 주며 한글을 공부를 하고 교회 생활을 한다.

아더리타는 “2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한글을 몰라 문해학교에서 같이 배웠다”며 “한글학교 다니면서 나와 같이 하나님을 영접했다”고 덧붙였다. “우리 며느리가 애들에게 영어 가르치는 교사여”하며 자랑하던 ‘호랑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가 그간 미안하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 이 얘길 하며 이제는 40대가 된 아더리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도화교회 이영숙(50) 사모는 비트람의 특별 과외를 곰곰이 생각했다. 인사성 좋고, 순발력 뛰어난 비트람이 읽고 쓰는 훈련을 꾸준히 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교회 부설 기도동산에서 일하는 여건상 사람 접하기 쉽지 않아 한국어를 쓸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것이 비트람의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문 목사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문해학교 설립 이유를 말했다.

“목사인 제 입장에서 ‘글을 몰라 천국을 못 가는 것 아니냐’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가장 마음 아팠습니다. 한 할머니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송한 ‘암 검진’ 안내장을 암 판정으로 알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주여성들도 그 같은 어려움을 겪겠지요. 도화문해학교는 교회가 이웃에 할 수 있는 귀중한 사역이라고 봅니다. 주일 예배에서 성경 본문 말씀을 척척 찾는 문해학교 학생들을 볼 땐 ‘아, 하나님 은혜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성경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마지막 절은 이러하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도화문해학교 학생들은 거침없이 ‘읽었다’.

제천=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