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 소동은 국민의 온라인 공간을 모니터링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국민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검열하겠다는 '엄포'로 받아들여 지면서 발생한 웃지 못할 촌극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메신저가 생활 속 주요 소통수단으로 자리잡은 만큼 대중은 온라인·모바일상에서의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 문제에도 민감해졌다. 스마트폰으로 많은 일을 처리하고 막대한 정보를 저장하게 되면서 보안 문제에 예민해진 것이다. 카카오가 보안 문제에 있어서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결국 보안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해외 모바일 메신저로 향하고 있다.
텔레그램은 그간 국내에서 주로 사용돼온 카카오톡이나 라인처럼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국내 사용자들이 쓰기에 사용자 환경은 카카오톡이나 라인이 더 편리할지 모른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메시지를 아무나 풀 수 없는 수준으로 암호화해 저장하기 때문에 국내 수사기관에 검열당할 우려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외면하고 텔레그램으로 돌아서는 이유다. 텔레그램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홍콩,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상치 않은 인기를 누리게 된 텔레그램은 본격적인 한국 진출 채비를 마치고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일 홈페이지 자주 묻는 질문(FAQ) 코너를 한국어로 서비스하더니 다음날에는 한국어 버전을 공식 출시했다. 9일에는 아이폰용 한글판 버전이 나왔다.
텔레그램은 스스로 ‘속도와 보안성에 집중한 메신저’라고 강조하고 있다. 텔레그램은 정부 관계자, 직장 상사 등 훔쳐볼 수 있는 제삼자로부터 개인의 대화 내용을 보호하고 광고 업체의 정보 접근을 차단하는 걸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다고 내세운다. 텔레그램은 대화 내용을 암호화해 저장하는데, 아무도 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암호를 풀어내는 사람에게는 20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텔레그램의 핵심 기능은 ‘비밀 대화(Secret Chat)’다. 텔레그램도 일반 대화는 대화 내용이 암호화돼 서버에 저장된다. 하지만 비밀 대화 기능을 선택하면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대화 내용이 자동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화 내용 삭제 시간을 ‘1분’으로 설정하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고 나서 1분 후 대화가 삭제되는 것이다. 텔레그램은 “비밀 대화는 서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미국 젊은층이 애용하는 메신저 ‘스냅챗’이나 페이스북이 출시한 사진·영상 공유 메시지 서비스 ‘슬링샷’도 이와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화 내용이 사라진다.
반면 카카오톡의 경우 지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모든 내용이 저장된다. 기존에는 3∼7일가량 대화 내용이 카카오톡 서버에 남아 있었다. 3∼7일 안에 이뤄진 대화 내용이라면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제공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카카오톡은 사용자 불만이 커지자 대화 내용을 암호화하기로 했다.
국내 IT업계는 검열 논란이 확대되면 국내 업체가 주도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주도권을 해외 업체에 내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카카오톡의 아성이 쉽사리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략 가능한 시장이라고 판단되면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해외 메신저 업체들이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시장 규모는 작지만 변화에 민감하고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용자들이 많아서 ‘테스트 베드’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국내 사용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동영상, 이메일의 경우 페이스북, 유튜브, 지메일 등 해외 업체 서비스를 많이 사용해 왔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메신저만큼은 카카오톡의 ‘충성 고객’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이버 검열 논란은 그들에게 카카오톡 대신 텔레그램이라는 대안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줬다.
업계 관계자는 10일 “전자상거래, 게임, 동영상 등의 분야에선 이미 해외 IT 대기업들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마저 휘청거리게 된다면 우리 벤처기업들의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사이버 망명’ 러시] 가족끼리 친구끼리 내밀한 대화를 감시한다고?
입력 2014-10-11 04:09 수정 2014-10-11 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