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한국도로공사 발주로 착공된 전국 고속도로 터널 121개 중 64.5%인 78개가 부실하게 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업체들이 ‘록볼트(rock bolt)’ 같은 핵심 자재를 설계보다 최대 70% 가까이 적게 넣고 작업했기 때문이다. 록볼트는 터널 공사 때 암반에 삽입하는 지름 2∼3cm, 길이 5∼10m의 철근이다. 지지대 역할을 해 터널의 안전성 문제와 직결된다.
◇록볼트 67.7% 빼먹고 터널 공사=동해고속도로 주문진∼속초 구간의 5공구 터널 공사에 설계된 록볼트 수량은 1만8350개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5930개만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필요한 수량의 3분의 1 정도만 들어간 것이다. 공사를 맡은 구산토건 현장소장 양모(47)씨는 2009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설계 수량보다 적은 록볼트로 시공한 뒤 정상적으로 자재가 쓰인 것처럼 허위로 공사대금을 청구했다. 이렇게 남긴 8억3000여만원은 회사 적자 보전 등에 쓰였다. 이후 시공사인 삼환기업 공무팀장 송모(50)씨와 품질관리과장 배모(38)씨는 록볼트 납품 명세표와 주요자재검사대장 등을 조작해 도로공사에 제출했다.
경부고속도로 영동∼옥천 구간에서 1공구 터널 공사를 맡은 선산토건 현장소장 이모(56)씨는 2010년 8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시공사인 계룡건설산업 현장소장 신모(55)씨와 짜고 전체 록볼트 설계 수량 6만3507개 중 절반에 가까운 2만8870개를 사용하지 않고도 설계대로 한 것처럼 공사비를 타냈다. 당초 투입하기로 한 사토 37만2258㎥ 중 12만6782㎥도 실제론 쓰이지 않았다. 이들은 공사 자재를 적게 사용하고 총 41억1450여만원을 빼돌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문홍성)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양씨 등 현장소장 3명을 구속 기소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또 주요자재검사대장 등을 위조한 7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11개 건설사 소속 16명이 터널 부실시공에 연루돼 재판을 받게 됐다. 이들이 가로챈 공사대금은 총 187억원에 이른다.
◇만연한 록볼트 부실 시공=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보를 받고 의뢰해 시작된 터널 록볼트 부실시공 수사는 검찰이 도로공사와 함께 전수조사를 진행하면서 ‘터널의 민낯’이 드러났다. 검찰은 “록볼트를 설계 수량보다 적게 시공하고 공사대금을 설계대로 청구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으로 정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 76개 공구(121개 터널) 가운데 38개 공구(78개 터널)에서 설계보다 적게 록볼트가 투입됐다. 검찰은 공사비를 부풀린 규모가 크고 록볼트 미시공 비율이 높은 8개 공구를 집중 수사했다.
시공 과정에서 발주처인 도로공사는 주요 자재의 반입 수량과 품질 등을 아예 검수하지 않거나 거래명세표 등으로만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시간 진행되는 터널 공사를 관리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 관계자는 “공사를 부실하게 감독한 도로공사 검측관리원에 대한 형사처벌 및 징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도로공사 검측관리원은 뇌물을 받지 않았을 경우 부실감리에 대해 벌점만 부과 받도록 규정돼 있다.
검찰은 도로공사에 터널 정밀안전진단을 의뢰하는 한편 건설사들이 과다 청구한 공사비를 전액 환수토록 할 계획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간 큰 부실시공’… 고속道 터널 붕괴 막는 ‘록볼트’ 빼돌려
입력 2014-10-10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