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업체 1년차 직원 A씨(24·여)의 회사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상사인 B과장(37)이 저녁마다 술자리에 참석토록 강요하는 통에 새벽에야 귀가하기 일쑤였다. 점심시간엔 김밥 샌드위치 등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럴 때마다 돈을 준 적도 없다.
상부에 문제를 제기하자 B과장은 “후배에 대한 관심과 교육이었다”고 해명했고, 직속 부장은 “B과장과 해결하라”고 했다. 결국 A씨는 지난 8월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9일 “직장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해봤자 내 경력에 불이익만 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A씨처럼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한다고 호소하는 직장인이 많다. 학교와 군대의 ‘왕따’ 같은 비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성인의 공간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회사 경쟁력을 갉아먹는 탓에 세계 각국이 ‘직장 괴롭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이다.
일본에는 몇 년 전 ‘파워 하라(Power harassment)’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힘 있는 상사가 부하 직원을 함부로 대하거나 괴롭히는 것을 뜻한다. 이에 후생노동성은 2011년 직장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한 원탁회의를 출범시켰다. ‘파워 하라’의 6가지 유형으로 신체·정신적 공격(폭행·상해·협박·모욕 등), 인간관계 단절(격리·따돌림·무시), 과다·과소 요구(업무 강요 또는 업무 배제), 개인자유 침해(과도한 참견)를 제시했다.
유럽은 20여년 전부터 직장 괴롭힘을 몰아내기 위한 법제화에 나섰다. 스웨덴은 1993년 최초로 ‘직장 괴롭힘 조례’를 채택했다. 핀란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직장 괴롭힘과 기타 부적절 행동에 관한 특별조항’을 신설했고, 프랑스도 2002년 사회선진화법을 도입했다. 이들은 고용주에게 괴롭힘 방지 의무를 부여하고 이로 인한 근로계약 파기는 무효로 간주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직장에서의 따돌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86.6%가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개발원은 직장 괴롭힘 1건이 개인과 회사에 초래하는 피해를 비용으로 환산할 경우 최소 1548만원이나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한 법제화 노력은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지난해 9월 고용주가 괴롭힘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가해자를 지체 없이 징계토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처럼 우리는 회사에서 인격적 모독을 당해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괴롭힘을 당할 경우 피해자라는 인식을 분명히 갖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기획] 직장 스며든 괴롭힘 문화 1건 피해액 최소 1548만원
입력 2014-10-10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