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용어 중에 ‘더블 딥(double dip)’이란 게 있다. 불황기에 접어든 경기가 바닥을 쳤음에도 치솟지 못한 채 다시 침체의 늪에 빠져버린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이중하강 또는 이중하락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늘 이 더블 딥의 언저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경제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던 더블 딥이 한국정치를 엄습하고 있다. 근래 들어 대한민국 정당들 가운데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지지와 신뢰를 받는 당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하게 40%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썩 탐탁한 반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두 번의 대선 승리에다 국회 과반 의석을 점유하면서도 다양한 사회계층과의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겨우 10% 후반 정도에 머물고 있다. 한때 30% 중반까지 기록했던 지지율은 수년째 꾸준하게 떨어져 왔다.
그 이유가 뭘까. 정치학자들은 이를 책임정치의 부재(不在)라는 한마디 말로 진단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한 자신들의 대표자들이 민의를 이루지 못하니, 국민들은 정치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당은 각종 정책과 공약을 실현할 현실적인 힘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반에는 정부 편들기와 눈치 보기에 ‘올인’하느라 야당과의 대화도, 국민이 바라는 정책들도 방기했다. 야당은 박근혜정부의 정통성 문제에만 집착하며 본래 임무를 애써 무시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올해 지방선거 등 수차례 실시된 선거에서 전패했음에도 당내 계파 간 집안싸움이 더 크게 번졌고, 이를 수습하느라 다른 문제에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위기, 그 다음에 또 위기를 맞았지만, 각 정당은 이를 반전시킬 회심의 카드를 만들지 못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타결 이전까지 국회는 151일간의 ‘입법 제로’ 상태에 처했다. 여당 지지자들 가운데는 여권의 답답함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발 정책이라면 무조건 ‘태클’ 먼저 걸고 보는 새정치연합을 접하고 아예 정치냉소층으로 전화(轉化)한 야당 지지자들은 더 많았다.
건전한 시민들이 정치에서 눈길을 돌리면, 여든 야든 골수 지지자들만 남게 돼 있다. ‘마니아’와 ‘팬’만 가진 정당이 국민들의 불편부당한 보편이익을 추구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세월호법 협상 국면에서 새정치연합이 보여준 행태가 바로 그렇다. 유가족들이 진상조사위 기소권 부여를 요구하자, 새정치연합은 자신들 주도로 만든 상설특검법 규정마저 부정하며 이를 받아줬다. 4개월이나 기소권 부여만 고집하다가 야당은 아무것도 제대로 얻지 못한 채 여론에 등 떠밀리듯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여당과 야당, 아니 우리 정치권 전체가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 숫자가 자꾸 줄어드는데도, 정당은 그저 기존의 관성대로만 움직인다. 잠잠하지만 언젠가 또 정쟁이 터지고, 서로 남 탓만 하다 한쪽은 길거리로, 또 한쪽은 자기들 당사로 숨어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연말이 되면 또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국회 본회의장 소란이 다시 불거지고, 그러다 날치기 통과, 의원끼리 몸싸움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의원들은 지역구에 내려가 또 이뤄지지도 못할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고, 몇 년이 지나면 또 총선이 치러질 것이다.
그 사이 서민들의 현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여의도 정치와 담을 쌓고 있을 것이다. 이러다가는 ‘더블 딥’이 아니라 ‘트리플 딥’ ‘쿼드러플 딥’으로까지 한국정치가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를 혐오감이 아니라 선망의 감정으로 대할 수 있는 날은 언제 찾아올까.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
[국민논단-신창호] 더블 딥에 빠진 한국 정치
입력 2014-10-10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