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사를 했다. 묵은 짐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갈등과 괴리 속에서 괴로웠다. 이젠 모든 짐에서 나를 해방시키고, 간단하고 작게 그리고 편안하게 살아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책과 물건들 옷들 그리고 살림살이들이 골치였다. 그래서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작업을 하고 반드시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을 땐 흐뭇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나는 경계 앞에 섰다. 그리고 나를 본다. 냉철한 이성은 오간 데가 없고 버릴까 말까? 줄까 말까? 이 경계 앞에서 나는 적어도 두 달 동안 전전긍긍하면서 처음 내 뜻으로 돌아가려는 싸움을 했었다. 왜 사람은 필요치도 않는 물건을 꼭 껴안고 사는가. 그래서 결국은 죽어서야 자녀들이 몽땅 폐기처분하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내가 살아서 소중한 기억과 추억들을 어딘가 의미 있는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을 꿈꾸었던 것이다.
내가 젊은 날 가난한 시절 어느 부자 선생님의 부군이 돌아가시고 그 유품 정리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눈이 핑 돌았다. 너무나 비싸고 좋은 물건들을 보고 어떻게 이런 걸 두고 죽었을까 내심 마음이 흔들렸다. 선생님이 “너 하나 가지렴”했을 때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몽블랑 만년필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마음이 푹 꺼지는 듯했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가지면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사람이 죽으면 물건도 죽는구나, 나는 그때 알았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나는 아주 작은 10평쯤 되는 집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도 많이 버리고 보냈는데도 집이 가득하다. 왜? 집이 작으니까.
아침 작은 돌 하나를 가지고 생각한다. 이 작은 돌 하나 가지고도 어깨에 걸친 조끼 하나를 가지고도 골백번 줄까 말까를 고민했던 나의 소유욕과 이기심은 내 작은 집까지 따라왔다. 누가 말했다. 3년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가차없이 버리라고. 10년 묵은 살림도 많다. 많이도 이별을 했지만 이 작은 집에 가져온 몇 가지 물건들은 과연 꼭 필요한 것들인지 나는 생각한다. 내가 꼭 버려야 할 물건은 내 이기심과 소유욕 아니었을까.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경계 앞에서 나를 본다
입력 2014-10-10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