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우리가 눈 뜨지 않으면 아이들은 눈 감지 못하리

입력 2014-10-10 02:33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을 담은 책 ‘눈먼 자들의 국가’가 나왔다. 12명 필자 중 김애란 김행숙 박민규 진은영(왼쪽부터). 문학동네 제공
지난봄, 정확히는 4월 16일부터다. 작가들은 쉽게 글을 쓸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른 후에야 그들은 펜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분량과 형식에 상관없이 풀어냈다. 글은 계간지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차례로 실렸다. 이중 가을호는 이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문학 계간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줄 알았는데 한 달 만에 초판 4000권이 매진된 것이다.

문학동네는 여름호와 가을호에 실렸던 세월호 관련 글 12편을 모아 단행권으로 묶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가 그것이다. 이 책은 초판 1만권을 찍은 후 4일 만에 1만권을 다시 찍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책이 나온 후 계간지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져 가을호는 3쇄까지 찍었다. 웬만해선 3000권 팔기도 어려운 출판계에 매우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을, 목소리를 기다려온 독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는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배명훈 황종연 김홍중 전규찬 김서영 홍철기의 글이 실렸다. 시인·소설가·평론가이거나 교수들이다. 글은 매우 논리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짚어 내거나, 매우 감성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모두 치열한 글이다.

표제작인 박민규의 글은 널리 회자됐다. 그는 이렇게 썼다. 타서는 안 될 배였다고. 하지만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바다는 잔잔했고 그래서 더 잔혹했다고. 그는 “이것은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정의하며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이라고 글을 맺었다.

김애란은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라고 썼다. “거기(임시 분향소) 모인 이들의 분노와 원망, 무기력과 절망, 죄책감과 슬픔도 결국 모두 산 자의 것”이라며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건 산 자들이 느끼는 그 비루한 것들의 목록 안에서조차 죽은 자들이 누릴 몫은 하나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고 적었다. 황정은은 “모두가 다 알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고 모르고 싶어 꾸준히 몰라왔던 일들이 세월호는 총합으로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작가들을 태운 버스가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김훈 김애란 김행숙 허은실 작가 등이 사나운 바다 앞에 섰다. 김훈은 그곳에서 만난 세월호 실종자 가족에게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세상에서 말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 답답하다. 특별히 드릴 위로의 말은 없다. 같이 분노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눈먼 자들의 국가’를 엮은 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은 얇지만 무거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실과 슬픔의 무게”라며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 이 책은 세상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출판사 문학동네와 저자들은 ‘눈먼 자들의 국가’의 판매 수익금과 인세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