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패션쇼도 구경한다고? '경복궁 앞 미술관' 시대를 열며 서울의 새 명소가 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이런 게 가능하다.
경기도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동물원 옆 미술관'이라는 애칭이 붙어있지만 그만큼 도심과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아쉽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생긴 서울관이 내달 13일로 개관 1주년을 맞는다. 수치는 고무적이다. 올 들어 9월 25일 현재 서울관 관람객은 80만4800명으로, 같은 기간의 과천관(55만7400명)보다 40% 이상 많다. 과천관과 덕수궁관(45만9900명) 관람객도 동반 상승해 서울관 개관이 미술 인구 저변 확대에 시너지를 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관의 집무실에서 정형민(62)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만났다. 창밖으로 인왕산이 시원하게 보였다. 그는 비 오는 날에는 인왕산 흰 바위가 검게 변해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의 풍경을 연출한다고 자랑했다.
#기업 후원은 한국 미술 발전에 절실
서울관 개관 1주년 축하부터 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이불 작가의 '태양의 도시 Ⅱ'와 '새벽의 노래 Ⅲ' 전시 얘기를 꺼냈다. 현대자동차가 연간 12억원씩 10년간 120억원을 후원하는 중진작가 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된 첫 사례다. 이런 대규모 기업 후원은 국내서는 처음이다. 하지만 기존에 후원받은 현대카드나 아시아나항공 카드 소지자 무료·할인 혜택이 형평성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실제 혜택 비중은 무료 입장객의 5%도 안 돼요. 논란거리가 될 만큼은 아니지 않은가요.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갑니다. 기업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지요. 이불 작가의 작품만 해도 참여한 팀원만 수십명에 달합니다. 작가의 작업이 팩토리(공장)가 돼가고 있습니다."
미국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은 100명 이상을 고용해 팩토리 개념을 탄생시켰는데, 작가는 개념을 잡아주고 조수들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현대미술의 경향이다.
정 관장은 또 "미술관에서 중요한 게 소장품이다.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을 갈 때 '모나리자' 같은 그곳의 유명 소장품을 보러 가는 것 아니냐. 결국은 비용의 문제다"라며 기업 후원의 절실함을 누차 피력했다. 그는 "영국 현대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10년 전에 40억원했다. 연간 작품 구입 예산 37억원으로는 잘나가는 작가의 작품 하나 사기 힘들다"면서 "미국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기업인, 컬렉터가 중심이 된 재단에서 미술관이 필요한 작품을 구매해준다"고 전했다.
#영화도 보고, 패션쇼도 보는 복합문화공간
동시대 미술은 난해해서 일반인이 다가가기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총 8개 전시실 중 2곳은 상설전시실로 만들어 익숙한 회화나 조각 작품을 지속적으로 교체해가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우환 사석원 등 알려진 작가의 작품으로 꾸민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전'이 그런 예지요. 서울관은 접근성이 뛰어나 누구나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데 어려운 작품만 있으면 발길이 끊어지지 않겠어요."(웃음)
그래도 미술은 어렵다며 손사래 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더니 "여기선 콘서트도, 연극도, 패션쇼도 하고 영화도 상영한다.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영화는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학예사 중 영화 전공자도 뽑았다"고 말했다.
정 관장은 서울관은 글로벌시장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을 제고해야 하는 만큼 실험성이 강하고 창의적인 미술 작품 전시에도 역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특히 요즘 미술계의 화두인 미술과 건축, 미술과 음악, 미술과 무용 등 장르 간 융합을 강조했다.
그는 부모들이 인상파 등 친숙한 교과서 그림만 자녀들에게 보여주지 말고 이런 첨단의 미술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선입관이 없는 아이들은 '미술이 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이를 통해 창의성을 개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아이 캔'(I can) 아닌 '아이 윌'(I will)
정 관장은 2012년 취임 이래 2년9개월째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고 있다. 재임 중 서울관·과천관·덕수궁관의 역할을 정립한 걸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서울관은 지금 벌어지는 동시대미술, 과천관은 195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 덕수궁관은 일제 강점기 근대미술을 보여주는 것으로 각각 성격이 다르다. 그는 "각 공간의 특성을 살렸다"면서 "예컨대 덕수궁미술관은 1933년 지어진 석조 건물인 데다 나무 바닥에 천장이 절대적으로 낮다. 그런 공간에 대작이 많은 미국현대미술 작품이 어울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 관장은 서울대 미대 교수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소장품이나 전시작가를 두고 서울대 출신 편중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미술관은 소장품을 통해 미술사를 정립하는 곳이다. 정치적인 걸 고려해 출신 학교별로 배분하면 우리나라 현대미술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후배 직장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을까. 그는 자신이 졸업한 미국의 명문 사립여대 웰슬리 대학의 교훈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학교의 모토는 의지를 강조하는 '아이 윌'(I will·할 것이다)입니다. 능력을 강조하는 '아이 캔'(I can·할 수 있다)과는 다르지요. 의지가 있으면 능력은 개발할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정형민 관장은… 전쟁세대로는 드문 코스모폴리탄, 동서양 아울러
정형민 관장은 1952년생이다. 한국전쟁 막바지에 태어난 전쟁세대로선 드물게 코스모폴리탄의 삶을 살았다. 주요국 대사를 거친 부친 덕분에 초등학생 시절인 1960년대 초반 파리 등 유럽에서 서구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한국인은 한국을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교육관에 따라 중·고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외국생활은 곧 이어졌는데 유학을 가면서 학부는 미국 보스턴의 웰슬리대학, 석사와 박사는 각각 앤아버의 미시간대학과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을 나왔다. 두 아이를 키우며 공부 하느라 10년 만에 박사 과정을 끝내고 92년 40세에 귀국했으니 그때까지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보낸 것이다.
해외에서의 오랜 삶은 역설적으로 한국 것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을까. 그는 대학에선 서양미술사를 했으나 대학원에서 석·박사는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 정 관장은 "대학 졸업 후 귀국했을 때 김홍도의 풍속화, 정선의 진경산수화 등 우리 전통 그림을 보고 충격을 느꼈다. 그때까지 배운 서양미술사의 방법론으로는 분석이 안 되더라. 다빈치를 알아도 김홍도를 모르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 답답함이 동양미술사를 선택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학 시절 구겐하임, 보스턴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유수의 뮤지엄이 집결된 대도시에서의 삶이 미술관 행정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산경험이 됐다고 한다.
손영옥 문화부장 yosohn@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손영옥 문화부장이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만나다
입력 2014-10-10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