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엄마 돈 2000만원 빼앗으려 한 50대 딸, 죄가 될까

입력 2014-10-09 02:11
충남 천안에 사는 정모(54·여)씨는 2011년 8월 70대 중반의 친어머니를 상대로 “빌려간 2000만원을 갚으라”며 민사소송을 냈다. 어머니가 세 들어 있던 다가구주택의 보증금도 가압류했다. 정씨가 금전대여 근거로 법원에 제출한 것은 2009년 6월 어머니가 직접 써 줬다는 차용증이었다. 차용증에는 ‘2000만원을 연이자 20%에 빌린다. 매달 5일 채권자 명의 통장에 이자를 입금하고 차용일로부터 2년 이내에 원금을 상환한다’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돈을 빌리지 않았고 차용증을 쓴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딸이 보험에 가입해 준다며 백지와 볼펜을 가져왔기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썼을 뿐이라는 얘기였다. 어머니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어머니는 민사소송에 대응해 정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정씨가 낸 민사소송이 법원에서 각하된 이후인 지난해 6월 정씨를 사기미수 및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기소했다. 허위 차용증을 갖고 법원까지 속여 어머니 돈 2000만원을 빼앗으려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었다. 1심 법원은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정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홀로 사는 피해자가 고율의 이자(월 33만원)를 입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차용증에 서명·날인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2심 역시 징역 1년형을 유지했다. 2심은 “어머니가 입었을 정신적 충격이 클 것”이라며 “부모에게 일부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것을 가지고 반환받아야 할 차용금이라고 주장하는 등 반성의 기색이 없다”고 정씨를 질책했다.

그런데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사기미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은 오심이라며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정씨가 가짜 차용증을 근거로 어머니 돈을 빼앗으려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형법상의 ‘친족상도례(親族上盜例)’ 규정 때문이다. 형법 328조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간의 재산범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돼 있다. 1·2심은 정씨가 소송 사기를 시도한 만큼 법원도 피해자가 돼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재산상의 권리를 가지는 자(어머니)만 피해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범죄자와 피해자가 모녀 사이라 친족상도례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규정은 가족 간 재산 분쟁에 사법기관이 최대한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다만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는 유죄로 확정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